위수정 외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위악을 떨지 않고 패악을 부리지 않으며 서서히...

by 우주에부는바람

2026년 이문학상 대상 수상자는 위수정 작가이다. 대상 수상작 뒤에 ‘문학작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쓴 작은 에세이가 하나 덧붙여진다. 그 중 아래의 부분에 거론된 ‘내향적 관종’이란 표현이 재미있어 옮겨 본다.

”작가는, 특히 소섥가는 소위 말하는 ‘내향적 관종’들이 많다.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성향의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게 아닐까. 물론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하튼 내향적 관종에 속하는 이들을 만나면 나는 동질감을 느낀다. 동질감이 곧 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와 유사한 부류가 있음에 안도한다. 예전에는 이 세계에 내가 유일한 존재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유일한 동시에 유사하다.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은 꼭 동거인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삶의 패턴, 사고방식, 가치관, 취향을 가진 이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SNS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p.56)


위수정 「눈과 돌멩이」

”하나가 두려워하면 나머지 하나는 현실적이 되었다. 셋이 있을 때도 그랬다. 낯선 건 무섭다. 하지만 낯선 것보다 두려운 건 아무도 없는 것. 재한은 유미와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진도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었을까. 가깝게 여겼을까. 그런데 왜. 재한은 생각에서 벗어나려 틈틈이 유미에게 농담을 던졌다. 과자를 까서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마지막에 있는 ‘과자를 까서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라는 문장을 두 번이나 잘못 타이핑했다. ‘과거를 까서 입에 넣어죽도 했다’라고. 재한과 유미는 지금 수진의 유골과 함께 일본 여행 중이다. 세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고, ‘느슨하게 오래가는 사이’로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제 둘이다. 수진은 암에 걸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진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유골을 일본의 어느 한 지역에 뿌려달라고 유언하였다. 소설은 두 친구의 유언 집행 과정을 다룬다. 소설에서 두 사람은 일본 도가쿠시에 도착하고, 폭설로 인한 기상 악화를 겪고, 여장남성 일본인 ‘코요’의 집을 방문한다.


위수정 「오후만 있던 일요일」

”... 오후 세시 십오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백미러로 얼굴을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늙은 눈빛이 있었다. 그 눈빛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p.97) 소설을 읽는 동안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느낀 것이 떠올랐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거울에 있어 나는 매번 놀란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4~5년 동안, 처량하였고 이어 처참해진 모습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지켜 보았다.) 소설 속 원희의 딸은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육십대의 할머니가 된 원희는 대학 교수인 동창과 피부과를 다닌다. 남편은 MTB 자전거에 열심이다. 원희는 친구를 따라 콘서트에 다녀온 이후 피아니스트 고주완의 열혈 팬이 되었다. 그 마음을 자신도 잘 모르겠는 팬심에 휩싸여 있다. 원희는 지금 육십대 초반이다.


김혜진 「관종들」

정해와 남편 영기,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 자신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특히나 아이들의 표면에서 읽히는 어떤 징후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현대의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좁혀진 거리만큼이나 그것을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떨어뜨리려는 반발력이 존재한다. 그 사이사이에 촘촘한 사정들이 있다.


성혜령 「대부호」

”엄마가 애기라고 생각하고 말을 일단 들어봐. 전에 무슨 관계 전문가 강의 보니까 결국 사람은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 말을 듣게 되어 있다던데.“ (p.187) 어려 오빠가 죽었고 아버지마저도 일 년 전쯤 돌아가셨다. 나는 스무 살에 집을 나왔고, 이제 엄마와 나만 남았다. 엄마의 골절로 나는 한동안 과거의 우리 집이었던 엄마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제 가방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가지고 다니며 악을 쓰는 유튜부의 구독자인 엄마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민진 「겨울의 윤리」

”... 숨이 차오른다. 부연 입김이 눈앞에 어린다. 흩어진다. 다시 숨이 피어오른다. 흩어진다. 사라진다. 미워하지 않는다.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던 듯 과거를 묻고,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모든 게 희미해진 곳까지 멀어진 나는 이곳에 묻힌 게 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 채 운다. 아무리 울어도 기억의 정경은 녹지 않는다. 용서해줄 사람도 용서받을 사람도 없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은 영원한 겨울이다.“ (p.239)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혼으로 아버지와 새엄마와 함께 살며 엄마와 종종 통화하지만 그마저도 끊겼던 해진. 죽은 삼촌의 혼령이 깃들었다는 트집으로 암자에 머물러야 했던 어린 해진. 그곳에서 성추행을 겪고 간혹 탈주해야 했던 해진. ‘나의 전생, 내가 아직 해진이었을 때의 이야기’와 현재 나의 사이에 큰 분별이 없어서 읽기에 힘이 든다.


정이현 「실패담 크루」

소설의 맨 처음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라는 문장이 이어지는데,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이 소설이야말로 그렇구나, 라고 여기게 된다. 만나 서로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모임이라니 재미있겠다, 싶지만 그 구성원이 뱉어내는 실패의 기억들은 그저 맨질맨질하다. 짧은 소설이지만 이야기의 여러 층위가 존재하고, 소소한 (뉘앙스의) 반전이 계속하여 나타난다.


함윤이 「우리의 적이 산을 오를 때」

면사무소 직원 노아는 박녹원과 함께 천문대를 찾는다. 그곳에서 녹원의 충고에 따라 정선화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소개를 받는 인물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정선화이다. 어린 아이나 노파의 뒷모습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날개를 오므린 독수리의 뒷모습이랄지 타이어를 찢는 어린 소년, 그리고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라고 노래를 부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소설에 있다.


위수정, 김혜진, 성혜령, 이민진, 정이현, 함윤이 / 2026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다산책방 / 368쪽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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