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외 《2026년 제7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삶의 습속에 깊숙한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임솔아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

“... 윤미가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동성혼이 합법화되었다. 윤미와 내가 사회로부터 부부로 인정받은 것은 우리의 오십여 년 중에 고작 일 년이었다. 윤미와 지하상가에 갇혀 뛰어다녔던 밤부터 윤미의 유품 몇 가지를 크라프트 정리함에 넣어두던 순간까지, 우리를 지켜온 것이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줄곧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과도 같은 피로 속에 살았다. 피로가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을 한 채 표면을 차지한 때도 많았다. 우리는 우리의 피로를 우리의 사랑만큼 사랑했다.” (p.21) 올해의 수상작이다. 사랑 이야기인데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여인의 평생에 걸친 사랑 이야기의 어떤 정수를 뽑아 놓았는데, 인간들 사이의 관계 맺기에 대한 아련한 정석을 본 것도 같다. 과감했던 시작으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러 마무리가 되었는데 단순한 허무로 다가오지 않아서 좋았다. 독자들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까... “... 우리의 하루하루는 대체로 무던했고 평화로웠다. 격렬하게 싸움을 한 적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한 적도, 둘 사이에 이견을 부추길 만한 갈등이 일어난 적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욕망하지 않기로 했다. 윤미와 나는 그것들을 함께 포기했다. 포기한 욕망들이 포기한 이후에도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났지만 요일에 맞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듯 우리는 버린 것들을 또 버리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돌봤다...” (p.37)


임솔아 「금빛 베드 러너」

검사 결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판정받은 딸 지윤이 있고,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엄마가 있다. 두 사람은 서울로 여행을 왔고, 엄마는 기침을 하고, 딸은 약국에서 적당한 약을 찾기 위해 헤맨다.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내색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무덤까지 가져갈 필요 또한 없다. 그 어느쪽으로의 선택이 무색한 그런 관계가 있다.


김혜진 「관종들」

정해와 남편 영기,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 자신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특히나 아이들의 표면에서 읽히는 어떤 징후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현대의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좁혀진 거리만큼이나 그것을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떨어뜨리려는 반발력이 존재한다. 그 사이사이에 촘촘한 사정들이 있다.


박솔뫼 「사과」

“... 선호를 만나 이 집에서 종종 시간을 보냈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도 좋을 만한 정신적 육체적 친밀함이 있었지만 애리의 마음속에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나에게는 잠이라는 갈 곳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졌고 선호는 점점 애리가 길에 서서 흙이 묻은 감자를 굳이 씹어 먹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는 애리와 그곳을 거의 매일 찾는 선호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고 정리하고 말기에는 문장의 사용이 독특하다. 잠을 공간으로 여기는 애리의 어떤 감수성이 소설 속 문장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끊어져야 할 때 혹은 끊어져야 할 데에서 끊어지지 않고 무심히 이어지는...


서장원 「상어」

정연은 상록과 이혼을 하였고 그 결정적인 이유는 한 번의 폭력이었다. 나는 그후 정연과 만나 결혼하였고, 정연은 어느 날 성록의 모친으로부터 성록이 바다에서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는 정연과 함께 그 바다로 향하고, 그 여정이 매끄럽지 않다. 정연은 정말 어째서 나를 선택한 것이고, 나와 정연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상어는 물밑 어딘가에 있어요. 하지만 수면 위에선 도저히 상어에 대해 짐작할 수 없어요.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또 얼마나 배가 고픈지. 하지만 서퍼들은 다들 상어를 기대하죠. 한 번쯤 보고 싶어 해요.” (p.155) 그러니까 나와 정연은 자신들만의 상어를 만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까...


이미상 「일일야성一日野性」

“지문으로 지저분한 빌라 유리문을 미려 운주는 오늘의 일일야성一日野性이 기다려졌다. 몇 년 사이에 유행한 그 말은 하루 동안 야성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주로 캠핑을 떠날 때 사용했다. 아니면 갑자기 월차를 쓰고 출근하지 않을 때라거나...” (p.175) 운주와 남편 경수는 자신들의 청년기를 복각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한다. ‘경수는 미래로 갔고 운주는 과거로 갔다.’ 경수는 갑작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되어 자조 모임을 갖고, 운주는 중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지배하였던 선숙을 찾아간다. 일종의 ‘일일야성一日野性’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임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정혜는 얼마전 거래처 직원인 원철을 교통 사고로 잃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깊은 슬픔을 내색할 수 없는 그런 사이였다. 원철의 남겨진 아내는 거래 장부를 토대로 정혜에게 미수금의 수납을 요구한다. 정혜는 한때 연인 사이였던 민수가 어머님의 죽음 이후 받은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혜는 민수와 사귀던 시절에 몇 차례 보았던 어머님과의 기억을 떠올리고, 민수와 만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민수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원철의 처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그런...


임솔아, 김혜진, 박솔뫼, 서장원, 이미상, 임현 / 2026 제7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 현대문학 / 251쪽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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