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도 아라타 《젠더 크라임》

범죄 소설과 여성주의 소설이 만나서 함께...

by 우주에부는바람

멀리 신사 근처 물가에 이상한 물체가 보이는데 아무래도 사람 같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순경은 아랫도리 노출 변태가 초등학교에 나타났다는 신고를 비롯해 다른 업무 처리를 하다가 그날 느지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신고가 들어왔던 신사 근처에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몸에 양손이 묶인 중년 사내의 사체가 발견한다.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구라오카 경보부 그리고 본청에서 내려온 시바가 짝을 이뤄 사건 해결에 나선다.


“하신 말씀은 대체로 알겠습니다. 주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날 전후 사정은 나중에 다시 여쭐 수 있으니 안사람께는 그때 또 협조를 부탁드리기로 하고요.” (p.73)


두 사람이 사망자인 사토 마사타카의 집을 방문하고 구라오카가 마사타카의 아내인 사토 에마에게 질문을 하는 순간 소설 《젠더 크라임》의 또다른 속성 그러니까 범죄 소설의 외피에 내포된 여성주의 소설이라는 내피가 드러난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던져진 위의 질문에는 남편을 ‘주인主人’(일가의 가장, 혹은 고용주의 의미)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중년 남성의 시각이 묻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구라오카와 함께 일하는 시바는 곧바로 아래와 같이 반발한다.


”여성이 배우자를 타인 앞에서 우리 주인은, 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 관계라는 걸 자각해야 한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걸 남이 지적하는 것도 이상하죠... 하지만 타인이 여성의 배우자를, 주인, 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욕이 됩니다. 그 여성은 배우자의 노예도 아니고 심부름꾼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주인主人은 자기 자신이니까요.“ (p.74)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사토 마사타카의 아들 사토 신토가 몇 년 전 강간 사건의 가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토를 비롯해 요네다, 구스모토, 요시카와는 대학생이던 시절 같은 대학생인 하시모토 마이카에게 약물을 먹였고 강간하였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들은 기소 유예 처분에 그쳤고, 이로 인해 죄값을 치른 이는 없다. 이제 구라오카와 시바는 다른 여성 경찰과 함께 피해자를 방문한다.


”성범죄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살인사건이 피해자 가족이나 친구, 또 가해자 가족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도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범죄임에도 사회 전체게 그 점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요.“ (p.115)


그곳에서 그들은 완전히 파괴된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과 대면하게 된다. 가해자 중 한 사람이 고용한 이는 이들을 협박했고 결국 제대로 된 재판에 이르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과 오빠는 여동생과 함께 살 수 없다. 피해자인 마이카가 견디지 못하가 때문이다. 이러한 조사 과정 중에 마이카의 오빠인 류스케와 죽은 마사타카의 아들이자 강간 가해자들 중 한 명인 신토가 경찰의 시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 저는 내내 품어온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습니다. 왜 야쿠모 형사부장님씩이나 되는 분이, 아무리 친한 정치가의 청탁이 있었다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를 생각해 알아서 처신한 거라고 해도, 자기 장래도 돌보지 않고 그런 청탁을 들어주고 말았을까······ 그것은 여자라는 성을 무의식중에 낮춰보기 때문이겠죠. 성범죄라고 해도, 겨우 그것쯤이야,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살인사건이었다면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시켰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영혼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잔인한 범죄라는 생각을 했다면 최소한 체포는 진행했을 것이고, 그 뒤는 제대로 된 경찰의 역할대로 검찰과 재판에 맡겼겠지요. 이것은 부장님만이 아니고 정치가만도 아니고 이 나라의 바탕에 있는 우리의······ ... 우리의, 죄입니다.“ (pp.282~283)


《젠더 크라임》은 항문에서 ‘눈에는 눈’이라는 쪽지가 발견된 이상한 사체와 관련된 범죄를 해결하는 미스터리 범죄 소설이다. 동시에 주인공인 구라오카가 젠더 의식을 갖춘 경찰관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여성주의 소설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된 페미니즘 현실이 안타깝다. 당연하고 옳은 것에 대한 공격이 만연하는 세상이니 이런 소설이 반갑다.



텐도 아라타 / 이규원 역 / 젠더 크라임 (ジェンダ-·クライム) / 북스피어 / 463쪽 / 20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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