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료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무수한 인물과 얽히고설킨 사건의 중앙을 잘도 꿰뚫어...

by 우주에부는바람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의 사와자키를 주인공으로 하는 하라 료의 네 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잠이여》로 이어진 첫 번째 시즌이 긑나고 구 년이 흐른 다음 발표된 두 번째 시즌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사와자키에 드리워진 와타나베라는 그림자가 사라진 다음인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한 달에 두세 차례 싸우고 경찰서에 끌려가는 불량 청소년이었던 아빠에게 와타나베 씨는 틀림없이 반어법으로 그렇게 말씀하셨겠죠. 하지만 바보였던 아빠는 열여덟 살이 되기 직전에 진짜 폭력단에 들어가고 말았어요. 그러고는 버젓이 와타나베 씨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답니다. 그러자 와타나베 씨는 아빠 얼굴이 뭉개지도록 두들겨 패더니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있다면 완전히 손을 씻은 다음에 다시 와라. 그때까지는 얼굴 들이밀지 마라’라고 하셨답니다.“ (pp.13~14)


그러니까 사건 의뢰를 위해 사무소에 들른 이부키 게이코는 거짓 자수로 경찰서에 자진항여 들어간 아버지 이부키 데쓰야와 와나타베의 관계를 사와자키에게 들이민다. 와타나베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서 폭력단에 들어가고, 다시 와타나베의 격렬한 반응 이후 어렵사리 폭력단에서 빠져나온 것이 이부키 데쓰야이다. 그런 데쓰야가 은행 저격 사건의 진범인 처남 뱃쇼 후미오를 대신해 자수를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 다른 정당 소속 정치가의 스캔들이나 오점이라면 정보를 손에 넣자마자 바로 발표해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같은 당 소속 정치가의 스캔들이나 오점은 쉽게 공표할 수 없잖아? 같은 식구들의 그런 정보는 쉽게 손에 들어오는데 말이야. 그리고 권좌가 가까워진 정치가들은 반드시 이렇게 생각할 거야. 라이벌인 저 녀석은 이미 내 감점 요인을 찾아내 ‘사흘남작’에게 일러 바쳤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p.124)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에는 또 하나의 축이 등장한다. 은행 저격 사건이 있은 뒤에 뱃쇼 후미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구십대 노인이 유괴를 당하였다. 그러니까 저격 사건과 유괴 사건이 묘하게 겹쳐졌고 그 유괴 사건의 주인공인 구십대 노인의 실체가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그리고 그 노인은 ‘사흘남작’이라고 불리며 정치권의 스캔들을 손에 쥐고 평생에 걸쳐 흔들어온 인물이다.


“... 등 뒤에서 방금 내가 들어온 문이 열리더니 조금 전에 응접실에서 본 여자가 들어왔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물을 들인 건지 어떤지 알 수 없을 만큼 밝고 풍성한 머리카락에 둘러싸인 흰 얼굴에는 오히려 자신의 아름다움을 소홀히 여기는 듯한 생기와 자신감이 드러났다... 브랜드 제품 같은 황갈색 비즈니스 정장을 입었는데, 그 정도면 서류 작성에 오타 하나 있는 걸로 꾸짖을 만한 신분은 아닌 듯했다. 누군가에게 오타를 지적할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입는 정장은 따로 있다...” (pp.151~152)


게다가 소설의 초반부 거짓 자수로 경찰서에 있던 이부키 데쓰야가 이동 중에 저격을 당하고, 그 저격에 결과로 오히려 쇼지 형사가 죽음에 이르고 이는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사와자키는 거짓 자수, 은행 저격 사건, 노인 유괴, 쇼지 형사의 죽음이라는 모든 과정에 휩쓸리지만 결국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결국 풀어낸다.


“신주쿠 역 구내와 플랫폼에는 볼꼴 사나운 교복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겨울방학도 이제 곧 끝날 즈음이었다. 즐거운 시간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게 인생의 첫걸음이지만, 괴로운 시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인생이 끝나갈 때가 다 되어서도 알기 어렵다...” (p.186)


하라 료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읽는 동안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등장 인물들의 숫자가 더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의 종류가 더 많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사와자키는 잘도 인물과 사건의 중앙을 잘도 꿰뚫어 나가는데 독자인 나는 그렇지 못해서 헤맸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하라 료의 엉뚱한 비유는 여전히 재미있고, 사건의 해결은 여전히 명료하였다.


하라 료 / 권일영 역 /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愚か者死すべし) / 비채 / 406쪽 / 201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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