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야 마는 한 인간이 주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20세기 초반의 휴머니즘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 작가가 쓴 글들은 (지금까지 읽은 것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느 하나 미흡한 것이 없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감수성과 예민함은 자신이 작성하는 모든 글들에 (그는 시를 발표하며 데뷔하였고 이후 소설과 희곡, 평론 그리고 전기물을 썼다)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그 중에서도 백미는 20세기의 3대 전기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다른 두 명은 영국의 L. 스트레이치, 프랑스의 A. 모루아 라고 한다) 그가 쓰는 전기물들이다.
“... 어떠한 이념이든 간에 그 이념이 다른 사람들의 신념을 단일화하고 복무규정으로 만들기 위해 테러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잔인성일 뿐이다. 가장 순수한 진리라 해도 폭력으로 그것을 남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정신에 반反하는 죄악이 된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20세기 초반 히틀러의 독재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를 험난하게 겪고 있던 츠바이크가 어느 날 자신에게 전달된 편지를 통하여 관심을 갖게 된 16세기의 인문주의자인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전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카스텔리오의 반대편에 위대했던 만큼 위험하였던 종교 개혁가 (로마 카톨릭의 전횡에 반발하여 발생한, 현대 기독교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파의 출현과 완성을 주도하였다고 할 수 있는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의 신학자들) 인 칼뱅이 함께 존재한다.
“언제나 도발적인 인간에게 굴복하곤 하는 인류는, 단 한 번도 참을성 많고 공정한 사람에게 굴종한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진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진리이며, 자신의 의지가 세계 법칙의 기본 공식이라고 선포할 용기를 가진 위대한 편집광들에게만 인류는 굴종해왔다.”
카스텔리오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츠바이크는 먼저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프랑스로부터 망명을 해서 스위스의 제네바에 둥지를 틀게 되는 칼뱅을 이야기한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개혁이라는 신념이 도를 넘고, 그래서 그것이 일종의 편집광적인 광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츠바이크는 칼뱅에게도 공정한 태도를 취하려 했다지만, 인문주의자인 그는 칼뱅이 결국 못마땅했으리라. 게다가 글을 쓸 당시는 그야말로 편집광적 인간의 초유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히틀러가 득세하던 시절이다.)
“... 칼뱅이 도시에 부여한 이 엄격한 절도와 통제는, 언제나 넘치는 여유에서만 생겨나는 온갖 신성한 힘들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측량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제네바는 경건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시민, 부지런한 신학자, 진지한 학자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지만, 칼뱅이 죽은 지 200년이 지나도록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단 한 명의 화가나 음악가, 예술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평범한 것을 위해 평범하지 않은 것을 희생시키고, 모순 없는 노예근성을 위해 창조적인 자유를 희생시킨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을 하나의 도시에 그대로 이식하였던 칼뱅은 점차 편집광적인 모습을 보이고, 결국은 자신이 주장하는 교리에 반하는 의견을 피력한 또다른 신학자인 세르베투스를 죽임으로써 점차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그러한 믿음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 사건을 계기로 카스텔리오는 칼뱅을 향하여 인문주의자인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고한 발언을 시작한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 제네바 사람들이 세르베투스를 죽였을 때, 그들은 교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희생시킨 것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 단지 신앙을 위해 불에 타 죽음으로써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 카스텔리오
하지만 칼뱅의 광신주의는 계속해서 좀더 비열하게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전진하고, 카스텔리오 또한 계속되는 헛소문과 이간질 등의 협잡 속에 직간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카스텔리오의 인문학적이고 논리적인 비판에 대해서 이미 귀를 막은 칼뱅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저 그를 없애야만 하는 반대파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 카스텔리오는 조금 일찍 자연사 하였고 (세르베투스는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칼뱅은 그의 죽음을 자신의 승리로 여겼다.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추종자를 가지려고 하며,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강요하는 사람은, 커다란 통에 약간의 포도주를 가진 바보가 포도주를 더 만들려고 통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그런 행동으로는 포도주를 조금도 늘리지 못하고 이미 가지고 있던 좋은 포도주를 망칠 뿐이다...” - 카스텔리오
그렇게 잊혀지는 것 같았던 카스텔리오는 결국 후세의 몇몇 학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츠바이크의 손에 이끌려 우리들에게 다가올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이념이나 의견에 대하여 억압해야만 가능한 폭력성을 띄고 있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 또한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렇게 오백여년전의 카스텔리오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는 법이다.
“... 모든 폭력 통치는 극히 짧은 시간에 낡아버리거나 차갑게 식어버리고, 모든 이데올로기와 그 일시적인 승리는 그 시대와 더불어 종말을 고한다. 오로지 모든 이념 중의 이념, 절대로 패하지 않는 이념인 정신적 자유의 이념만이 영원히 되살아나온다. 그것은 정신처럼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안인희 역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Castellio gegen 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 / 바오 / 304쪽 / 2009 (1936,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