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츠바이크를 통하여 역사 속의 한 순간으로 공간 이동하는 즐거운 경험...

by 우주에부는바람

*2010년 11월 3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실은 얼마전 스티브 잡스의 맹렬한 추종자인 직장 동료와 조금 다툰 적이 있다. 그녀는 가히 잡스교의 신도라 칭할만한데, 그런고로 그 교주 스티브 잡스가 도달한 어떤 경지에 대한 추종과 함께 그가 생산해내는 모든 것에 대하여 치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그에 반해 나는 스티브 잡스가 보이는 배타적인 고집과 광기에 다름 아닌 독선을 싫어한다고 밝히면서, 그런고로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생산품들에 대해 경외하기는 할 지언정, 스티브 잡스 자체를 존경한다거나 추앙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였다.


오히려 나는 스티브 잡스가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창조성을 우연의 결과라고 믿는 편이었다. (더불어 최근 영화로도 나온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창조 신화 또한 우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미 몇 년 전에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를 가진적이 있으니, 페이스북이 무에서 창조된 유라고 믿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의 혁신을 평가절하할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모든 맹신이 싫을 뿐이다.


“운명은 강한 자와 난폭한 자들에게 밀어닥친다. 여러 해 동안 그것은 노예처럼 단 한 사람에게만 복종한다. 예컨대 카이사르,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운명은 이상한 변덕에 사로잡혀 아무에게나 자신을 맡기기도 했다... 운명의 실이 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의 손에 떨어지면,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적인 놀이 속으로 자신들을 끌어들인 태풍 앞에 행복해하기보다는 파랗게 질려 벌벌 떨면서 자신의 손에 쥐어진 운명의 실을 두 손에서 놓아 버린다. 그런 사람이 강한 힘으로 운명을 붙잡아 그것과 함께 자신도 올라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위대한 것이 하찮은 것에게 자신을 내주는 일은 겨우 1초 동안만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런 기회는 한 번 놓치고 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거기에 속한 인류 개개인의 역사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인류 개개인의 역사는 어떤 논리적인 필연보다는 광기어린 우연에 의하여 좌우되기도 한다. 마땅히 추앙받아도 좋을 (이 무슨 딜레마인가 싶지만) 작가 츠바이크는 ‘인류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을 뽑아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한 순간들이 담겨져 있고, 그 순간들엔 어쩌면 그 순간들의 주체자인 그들조차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감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떠올리던 순간,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순간에도... (그러니 츠바이크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이 두 인물은 섭외 영순위였을 것이 분명하다)


책에는 모두 열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15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츠바이크가 뽑아낸 순간들은 작가의 현실감 넘치는 문장들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이 아무 이유 없이 열려져 있던 쪽문 하나 때문에 마흐메트 2세에게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프랑스의 국가이며 혁명의 노래인 <라 마르세예즈>가 (나중에는 혁명군의 반대편에 서는) 한 군인에 의하여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나폴레옹의 고지식한 부하 장군이 아니었다면 워털루 전투의 성패나 그 이후 유럽의 전개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위대한 모순이지만 영웅적인 죽음으로부터 삶이 솟아 나오고, 몰락으로부터 무한한 상승 의지가 솟아 나오는 법이다. 명예를 향한 욕망은 성공이라는 우연성에만 집착하며 불타오른다. 그러나 한 인간의 몰락만큼, 이길 수 없는 운명의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도록 그렇듯 장엄하게 인간의 심정을 드높이는 것은 없다. 그러한 몰락이야말로 시인이 여러 번 그리고 삶이 수없이 형상화해낸 모든 비극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비극인 것이다.”


츠바이크는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그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대신 바로 그 인물의 위대한 행동이 얼마나 사소한 순간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이후의 우리들에게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일깨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츠바이크는 그러한 위대한 순간의 우연성이 지닌 힘을, 그 성공과 실패의 희비 양쪽 모두에 골고루 부여한다.


츠바이크는 누구에게든 권할만한 작가이다. 그가 보여주는 (그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 <체스>는 정말 최고다.) 전기물들에는 생동감이 가득하고, 그 생동감은 전기를 읽는 우리들을 바로 그 현장으로 옮겨 놓는다. 그러니 아문센에 이어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착한 스콧이 자신의 일기를 통하여 전달하는 ‘여기에 볼 것이라곤 없다. 지난 며칠간의 몸서리나는 단조로움과 다른 그 무엇도 여기엔 없다.’ 라는 이야기 앞에서 우리의 가슴 또한 한없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안인희 역 / 광기와 우연의 역사 (Sternstunden der Menschheit) / 휴머니스트 / 335쪽 / 20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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