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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김남희 《여행할 땐, 책》

지금 여기에 붙박여 있는 우리를 시시하지 않도록 만드는...

  오늘 낮, 난독증에 시달리는 90학번 후배와 전화 연결이 되었다. 그 과정에 별 것은 없었다. 선배가 메신저로 전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후배는 몇 번 신호가 가지 않아 받았다. 나 누구다, 라고 이야기하자 아 네 형, 하고 자연스레 답했다. 후배의 목소리가 작아서 플레이시키고 있던 음악을 아예 껐다. 대전에 살고 있다는 말에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 청춘의 시절, 나에게 조르바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만 읽혔다. 4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읽은 조르바는 내게 자유 그 너머의 것을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그 자유를 가져온 열정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기는 쉽지만 그 감정 안에 갇혀 있지 않기는 어렵다. 조르바를 동경해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20대의 나는 지나갔다. 빛의 세례를 누리며 살아가되 광기에 휩싸이지 않는 것. 열정을 잃지 않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 내 남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그 정도다.” (pp.111~112)


  나는 서대전역이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고, 후배는 지금 서대전역이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후배가 겪고 있는 난독의 상황에 대해서는 조금만 이야기했다. 주로 후배의 동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후배의 동기들의 안부를 챙겨서 전달해주었다. 그리고는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제 한 번 보기는 보아야 할 텐데, 시절이 이러니 안타깝다, 그래도 가끔 연락 정도는 하자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인간이 장소에 기대어 삶을 이어가는 한 세상 어디에도 슬픔이 배이지 않은 도시는 없을 것이다. 삶이 있는 한 어떤 공간에서나 고통스러운 일들은 생겨난다. 다만 시간이라는 열차의 바퀴 자국이 그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 뿐. 냉정한 시간이 이제는 치유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이다. 길고 고통스러운 치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쌓여온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그리워하면서도 공간을 바꾸어 삶 또한 변화시키고 싶다는 모순되는 욕망을 안은 채로...” (p.70)


    참으로 순박하였던 후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결혼 전이다. 그러니까 이십 년이 넘었다. 이야기 중에 너도 많이 늙었겠구나, 라고 하였더니 셈을 한지 오래 되어 자신이 몇 살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약을 먹어 얼굴이 부어 예전의 모습과 달라졌으니 나를 몰라볼 수도 있다고 하였더니, 예전에 형은 술을 약처럼 먹어서 술이 있어야만 살 수 있었잖아요, 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 하고 넘어갔다. 


  “... 고양이가 인간을 홀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통제되지 않는 야성 때문이 아닐까. 주인에게조차 무심하고, 수틀리면 바로 할퀴어대고, 가출도 당당하게 한다. 보은이랍시고 갓 잡은 생쥐를 베갯머리에 놓아두기도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간다. 하염없이 늘어져 자다가 털이나 핥으며 보내는 일생이다. 낮잠은커녕 밤잠도 모자라고, 게으름은 죄악이 되는 게 인간의 삶이니 고양이가 부러울 수밖에. 이 바쁜 세상에 저렇게 사는 존재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되는 심정이랄까. 고양이는 어쩌면 인간이 꾸는 게으른 꿈일지도 모른다.” (pp.20~21)


  읽고 쓰는 것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했다. 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쓸 수는 있는 거 아니냐, 라고 이야기했더니 후배가 살짝 웃었다. 쓴 것을 읽을 수 없으니 그렇게 씌어진 것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런 판단조차 불가능한 글을 글이라고 할 수 있냐는 정도로 요약되는 말이 이어졌다. 그렇기도 하겠구나, 라며 길지 않게 얼버무렸다. 난독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더니 아주 짧은 글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얼마나 짧은 글이 얼마나 짧은 글이냐고 묻지는 못했다. 


  “어떤 사회에나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볼 것을 요구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진실을 혼자서 대면하는 고통과 그로 인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는 고통이다. 서경식이라는 존재 또한 그렇다... 그는 과거를 잊지 않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잊고 싶은 과거를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기에 나는 계속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시선이 향하는 어두운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치열하게 마주함으로써 독립된 사고를 하는 단독자로 서고 싶다는 열망으로.” (p.193)


  나는 지금 후배와의 길지 않은 대화를 길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행인 양 느끼고 있다. 여행은 이미 끝이 났는데 그제야 디테일한 상황을 떠올리는 중이다. 그러면서 김남희의 《여행할 땐, 책》을 읽었다. 저자는 적당한 깊이에 독자를 머물도록 만드는 문장을 구사한다. 여행 작가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지금 여기에 붙박여 있는 우리를 시시하지 않도록 만든다. 각각의 여행에 각각의 책을 동반시키고 있는데, 독서의 이력이 많이 겹쳐서 반가운 마음도 컸다.



김남희 / 여행할 땐, 책 / 수오서재 / 252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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