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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김내훈 《프로보커터》

읽으면 읽을수록 비관의 방향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되는...

  ”... 이 책은 ‘나쁜 관종’에 관한 이야기다. 주목과 관심을 위해 무슨 짓이든 불사하는 ‘관종의 멘털리티’는 정치 담론장에서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특정 정치인이나 유명인, 혹은 인종·종교 등을 향해 강도 높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유튜버가 급증하고 있다... 이렇게 그들‘을 공격하는 행위는 ’우리 편‘을 모으고 결집해 낸다... 이런 사람들은 문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문화평론가로 불리지 않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만 정치평론가로 불리지 않는다. 대중 강연과 거리 연설에도 곧잘 나서지만 운동가로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신념이나 가치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무런 내용 없이 ’어그로‘를 끄는 것만으로 커리어를 쌓아간다.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이들을 ’프로보커터provocateur’, 우리말로 ‘도발자’라고 일컫는다.“ (pp.7~8)


  책의 제목에 다양한 수식어들이 붙어 있다.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 이라는 수식은 제목인 ‘프로보커터’ 앞에 붙어 설명한다. ‘주목경제 시대의 문화정치와 관종 멘털리티 연구’는 일종의 부제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았을 때 저자가 ‘프로보커터’를 구체적으로 다루는데 너무 감상적인 거 아냐,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법한데, 이러한 우려를 미리 짐작하며 붙인 부제가 아닌가 짐작해본다.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주목이다. 손쉽고 빠르게 접근 가능하며 무한히 공급되는 정보 그 자체에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희소성을 띠며, 따라서 비용을 치르고서 접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보와 달리 희소성을 지니며 아무나 막 가져다 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주목이다. 아무리 멀티테스킹이 각광받는 세상이라지만 한 사람이 동시에 보낼 수 있는 주목은 한정되기 때문이다.” (p.38)


  이처럼 딱딱한 부제를 사용한 데에는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프로보커터의 사례 분석 부분이 요인일 수 있다. 저자는 (프로보커터들의 프로보커터) 진중권, (게으른, 혹은 무능한 프로보커터) 서민, (‘공정한 편파’가 감춘 정치 종족주의) 김어준이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실명을 대놓고 사용한다. 여기에 저자의 주관이 작용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딱딱한 부제를 붙이지 않았을까 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후반부의 실명 비판보다는 앞쪽의 ‘주목경제 시대의 문화정치적 양상을 검토한’ 부분에 주목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이렇듯 좌파의 문화정치 전략이었던 ‘선 넘기’, 위반의 미학은 주목경제 시대에 이르러 하나의 장사 수완이 되었다. 나아가 이제는 극우 진영의 주효한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전통의 옹호와 회복을 통한 현상 유지를 골자로 하는 보수주의와 위반이 내포하는 반도덕주의, 무정부주의, 공격적 세속주의는 언뜻 양립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의 극우주의는 대중의 이목이 쏠릴 법한 선을 넘는 행위에 교묘히 메시지를 부여함으로써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pp.59~60)


  하지만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아모스 이’부터 우리를 주목하도록 하는 것은 실재하는 ‘프로보커터’의 사례이다. 아모스 이는 ‘16세 때부터 세계적인 유튜버이자 영화감독, 배우, 블로거’인 상기포르인으로 종교비판에서 시작하였지만 ‘특정 종교나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쳐 ‘관심에서 사라지느니 차라리 주목받는 소아성애자가 되겠다’는 생각이라도 가졌는지 소아성애 옹호로 막을 내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보커터’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의견과 일치하는 콘텐츠에는 ‘좋아요’를 누른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콘텐츠에는 ‘싫어요’를 누른다. 이런 행위는 소셜 플랫폼에서 해당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게시물의 성향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자연히 이용자의 선호에 부합하는 게시물이 메인화면에 노출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용자끼리 상호작용이 빈번해지면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만들어진다. 필터 버블이란 ‘그들만의 리그’를 세상의 전부로 인식하는 착시 현상을 말한다. 이는 확증편향의 현대적 현상이다. 게다가 소셜미디어와 일상의 유착이 갈수록 끈끈해지는 흐름에서 개인의 세계관을 소셜미디어에 동기화하려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콘텐츠만을 ‘팔로우’하고 ‘구독’하는 사람들은 해당 콘텐츠의 화자가 피력하는 의견과 주장에 자신의 생각을 포갠다. 내 성향과 맞는 것만 눈에 띄기에 내가 보는 것이 곧 나의 성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끼리끼리 한데 모인 필터 버블 안에서 가뜩이나 닮은 성향을 상호 증폭시키는 현상, 이른바 ‘에코 체임버Eco Chamber’(반향실 효과)가 나타난다.” (p.68)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아모스 이’라는 유명한 ‘프로보커터’를 소개함으로써 ‘프로보커터’에 대한 주목 작업을 펼친다. 이어지는 책의 전반부는 어떻게 하여 ‘프로보커터’가 탄생하게 되었는가,로 정리될 수 있다. 단순한 정보로는 가치가 없어진 시대에 ‘주목’이야말로 새롭게 가치를 갖는 덕목이 되었고, 여기에 선을 넘는 위반의 행위들이 이 ‘주목’을 강화시키는 작업을 하며, 생각이 아니라 공감에 의지하는 ‘사유의 외주화’가 만연하고 정치적인 ‘밈’이 문제들을 의인화시키면서, 결국 ‘프로보커터’의 탄생에 사회문화정치적인 기반을 제공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 주목을 밑천으로 조회수 장사나 후원금 장사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영어권 사회에서는 프로보커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정치적 활동이나 시사 논평을 내놓는 데 있어서 해당 이슈와 관련한 일말의 전문성을 보여줄 의무가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퍼포먼스 능력이다. 프로보커터의 퍼포먼스란 도발이다. 이 책에선 지금부터 ‘도발’을 트롤링이나 허위사실 유포, 공동체의 금도를 깨는 ‘선 넘기’ 등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주목을 끌려는 행위 전반을 망라하는 개념으로 쓰기로 한다. 말 그대로 도발 행위가 이들의 생계 수단인 만큼 그것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커리어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p.109)


  전반부에서 ‘프로보커터’의 개념 설명이 끝나면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실제 사례 분석이 등장한다. 그 첫 번째 주자로 진중권을 거론하는데 저자는 ‘프로보커터들의 프로보커터’라고 그를 지칭한다. 최근들어 (저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게 ‘프로보커터’로서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었다, 라고 하지만) 특히나 ‘프로보커터’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에게 잔뜩 짜증이 나 있는 많은 독자에게 일정 정도 부응한다. 다만, 저자는 그마저도 이제 시효를 다한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곧이어 크게 활개를 치게 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진중권은 갑자기 왜 저렇게 됐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애초부터 ‘아웃사이더’ 진중권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맹공을 퍼붓는 것을 보며 ‘우리 편이 갑자기 왜?’혹은 ‘단독자’를 자처했다. 정파나 진영 논리와 무관한 ‘모두 까기’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따라서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앞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적 행보가 ‘우리 편’이라는 착시를 만든 것뿐이다. 진지하게 탐구해볼 만한 의문은 ‘진중권은 왜 저렇게까지 악에 받쳤을까?’라는 것이다.” (p.124)


  이어 서민과 김어준을 거쳐 저자는 ‘태극기코인’ 혹은 ‘반페미코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는 여러 유튜버, <가세연>이나 <GZSS TV>, 강용석을 비롯해 윤서인, 성제준, 안정권, 여명숙에서 유승준에 이르는 이들을 조금씩 거론한다. ‘선 넘기’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대중들의 쌈짓돈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는 이들이 남발하는 ‘어그로’와 ‘트롤링’의 세계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았다. 


  “그는 자신이 비난하는 대상이 최대한 언짢게끔 최선을 다한다. 참다못한 상대는 마침내 발끈하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다. 이를 ‘사이다’라고 느낀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이 이어진다. 이렇듯 ①‘싸가지 없는’ 발언으로 상대를 도발한다. ②이에 격동한 상대를 ‘적’으로 만든다. ③적의 적은 나의 친구, 자연스럽게 ‘우리 편’ 추종자를 확보한다. 이것이 그의 전략의 핵심이다. 요컨대 그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논객으로 만든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어젠다가 아니라 퍼포먼스 능력이다.” (pp.126~127)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미국에 비하면 대한민국 ‘프로보커터’의 난동은 소꿉장난 수준이라 적고 있다. 사실 미국은 ‘프로보커터’의 왕이라고 해도 무방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대사 전체를 미국 따라잡기에 바친 나라의 일원이다. 책을 읽으면 더욱 비관적인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이유다. 특히나 우리는 무뇌를 지향하는 언론을 레거시 미디어로 두고 있고, 이들은 ‘프로보커터’를 만류하는 역할 대신 자신들의 ‘프로보커터’화를 뉴 미디어로의 변신이라며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김내훈 / 프로보커터 (Provocateur) / 서해문집 / 231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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