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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김사과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

정신 나간 몰골로 정신 나간 미국을 씹다 보면...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가는 이유는 기린을 보기 위해서다. 파리에 마카롱을 먹으러 가거나, 런던에 유서 깊은 사이코패스들을 구경하러 가듯이, 만약 당신이 뉴욕을 방문한다면 그것은 정신 나간 산책을 실행하기 위함이다... 원대하게 뻗어나가는 망상의 끝에서 감동과 서글픔 그리고 다 털린 지갑을 깨닫는 순간까지 걷고 또 걷기. 산책의 형식으로 제시되는 이 신선하고 고약한 자기 고문은 뉴욕을 체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pp.9~10)


  뉴욕이라고 하면,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과 박상미의 《뉴요커》가 먼저 떠오른다. 내게 뉴욕은 그렇게 책 속에 있다. 《뉴욕 3부작》은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의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잠겨 있는 방>은 《내 아내의 남편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박상미의 《뉴요커》를 읽으며 ‘서울러’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통합 가능하고 설명 가능한 어떤 특징을 떠올리는 데는 실패하여, 우리는 여태 신생新生이다, 라고 자평하고 마무리하였다.


  “베테랑 아파트 관리자에 따르면 쓰레기봉투를 상대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가득 찬 주사기에 손바닥을 찔리기 싫다면 말이다. 즉, 요새 뉴욕 다운타운의 정키들은 더러운 차림새로 수상한 공원을 서성이는 대신 유기농 비누로 세 번 샤워하고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닮은 고급 콘도에 쳐박혀 대형 티브이 속 넷플릭스 시리즈를 배경으로 팔에 주사기 바늘을 꽂는다. 취했을 때의 괴벽은 청서와 장보기, 커피 머신 공들여 닦기...” (p.48)


  뉴욕에는 두 명의 친구가 살고 있(을 것이)다. 단언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과 연락하지 않고 몇 해가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은 마지막 연락 즈음에 유럽으로의 이주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어쩌면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고, 뉴욕 이전에 그는 필리핀에 살았다. 다른 한 명은 여러 여건상 뉴욕에 머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녀에게는 어여쁜 딸이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동의하는 플롯이 있다. 미국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일까? 나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오히려 이곳만큼 한결같은 장소가 드물다고 느낀다. 즉, 미국이 지금 나쁘다면, 과거에도 딱 지금만큼 나빴을 것이라는 것이 내 가설이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역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원본이 아닌 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주자들의 나라다. 그들은 이쪽에 가짜 프랑스 마을을 짓고, 저쪽에는 가짜 영국 마을을 지었다. 서쪽에는 가짜 중국인 마을이 생겨났고, 동쪽에는 가짜 유대인 마을이 생겨났다.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은 그들의 뿌리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유일하게 진짜였던 원주민들 또한 무자비한 학살로 모든 토대가 파괴된 뒤 가짜 원주민 마을 안에 박제됐다. 이렇게 미국에는 애초에 진짜가 없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 이 텅 빈 제로의 땅에 나빠질 미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p.60)


  김사과의 뉴욕은 광기로 얼룩져 있다. 아니 그보다는 광기로 얼룩진 눈으로 뉴욕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정신을 차려 뉴욕을 혹은 미국을 재단하여 자신의 제단에 올려 놓지만 그 시작은 어쨌든 광인의 그것으로부터 연유하였다고 짐작하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깥은 불타는 늪’이고 ‘정신병원에 갇힘’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이 거사의 책임자이다.


  “... 이렇게 뉴욕 사람들이 탕진을 거듭하며 몰두하는 것은 소설 《마담 보바리》의 파티 장면에 등장할 법한 화려한 복장이 아니라 정반대로, 전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듯, 그저 미치도록 무심하여 시크한 거리의 행인1 스타일이다.” (p.91)


  그러나 세 개의 챕터 중 첫 번째 챕터가 가장 그렇고, 두 번째 챕터로 넘어가면 보다 일상화된 뉴욕을 볼 수 있다. 뉴욕에 머물며 직접 경험한 바를 특유의 시니컬한 필체로 그려낸다. 그러다 세 번째 챕터로 넘어가면 뉴욕으로부터 확장된 미국으로 시선을 넘긴다. 특히나 작가가 미국에 있었던 기간과 미국이 트럼프라는 현상에 잠식되었던 시기가 겹친다. 작가는 그야말로 선거라는 현미경을 통하여 더욱 확대된 미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황홀하게 반짝이는 거짓으로 채워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명백한 사실일수록 격렬하게 부정한다. 민주주의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마법이라면, 그 마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더 이상 타인들을 인정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지금 지옥에 살고 있다. 지옥의 난민들인 그들이 오직 소망하는 것은 패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기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죽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목을 조르려는 적들을 차단하기 위해···

  세상은 꾸준히 나쁜 쪽으로 향하고 있고, 그렇다면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로가 벌이는 온갖 징그러운 일들의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일련의 일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얼굴을 보고서도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게 자신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을까?” (pp.144~145)


  (부러) 정신 나간 몰골이 되어 정신 나간 미국을 신나게 씹어대는 책을 읽고 있는 동안, 한국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들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나와 아내도 오랜만에 TV에서 관련 뉴스를 보았다. 봉준호는 오스카를 로컬이라고 일갈했지만 그건 그거고 상은 상이니까... 그건 그렇고 책 속의 미국만큼이나 한결 같이 나쁜 방향으로 쾌속 질주 중인 한국의 언론에서는 부리나케 윤여정과 34년전 이혼한 조영남을 인터뷰했는데... 


  “... 아아 이 미국적 쾌적함이란! 기분 좋은 동물의 삶이란! 이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어찌나 열심히 미쳐가는지 바깥 사람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 가지 멸균 물티슈로 다용도실을 채워놓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는 마음. 그런데 왜 이렇게 더러움은 사라지지 않을까? 사방에서 불결함의 공격이 밀려드는 이 신비로운 도시에서 끝없이 쓸고 닦기를 반복해봤자 쥐와 바퀴벌레의 사려 깊은 친구 역할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표백과 재탄생이라는 성가신 처리 과정의 영원한 반복에 불과하다. 잘 자란 중산층 미국인들을 보면 탄생의 순간부터 주도면밀하게 어떤 것들이 도려내진 것 같은, 이후로도 주기적인 잡초 뽑기를 부지런히 행하며 집요하게 관리되는 매끈한 결여가 느껴진다. 그 결과 빚어지는 완벽한 인공성이 바로 미국의 미학 아닐까? 한편 그 부지런한 결여에서 파생되는 이해도 자각도 설명도 불가능한 슬픔이 미국적 감상주의의 핵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팔에서 주기적으로 전해져오는 고통 같은 것.” (pp.214~215)



김사과 /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 / 알마 / 226쪽/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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