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 테드 창 외 《에스에프널 2021 Vol.1》

이쪽 세계를 기반으로 구축되니 저쪽 세계도 만만치 않아...

by 우주에부는바람

현실 세계가 나아가는 황당한 불합리의 방향에 분개하여 뉴스로부터 고개를 돌린 지 한 달여가 되어간다. 대신 SF 소설에 맛을 들여볼까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표현하는 세계도 만만치 않다. 하긴 이쪽 세계가 기반이 되어 저쪽 세계도 구축이 되는 것이니... 엊그제 4월에 걸맞지 않은 추운 날씨에 얇게 입고 출근을 했다 호되게 당했다. 몸과 마음은 건강해졌는데 뉴스를 보지 않으니 뉴스 말미의 날씨도 볼 수 없게 된 탓이다. 그렇게 되었다.


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상대 국가를 향하여 무자비한 살상력을 지닌 마시일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선택된 아이를 죽여야만 한다.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열쇠가 그 아이의 몸속에 있고, 그 아이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것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마는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있는 궁에서 대통령과 함께 생활하고, 대통령은 나이마를 통해 고뇌하고, 전쟁의 상황은 점차 위험 수위를 높여만 간다.


켄 리우 「추모와 기도」

헤일리의 죽음 이후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확대 재상되는 헤일리의 죽음을 살펴본다. 동생인 에밀리, 아버지인 그레그, 엄마인 애비게일, 고모인 세라의 시선이 그것이다. 헤일리는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이다. 헤일리의 가족들도 피해자일 테지만, 상황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터넷 분탕질이라는 현실을 통해 헤일리는 죽음 이후에 더욱 극심한 곤욕을 치르게 된다.


테드 창 「2059년에도 부유층 자녀들이 여전히 유리한 이유」

‘유전자 평등 프로젝트’는 ‘지능과 관련된 80개의 유전자를 수정하는 방식의 통상적인 인지 강화 프로토콜을 제공’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이러한 유전자 변이의 수혜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선택하여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그러한 수혜자들은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출세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 셈이다.


그렉 이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피지로의 신혼 여행 대신 (아버지의 선물이라는 방식으로) 달로의 여행을 선택한 아이샤는 그러나 갑작스레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되면서 달에 발이 묶이게 된다. 남편은 지구로 떠나는 로켓을 막으려다 죽었고, 아이샤는 딸 누리를 달에서 낳았다. 그리고 이제 아이샤는 딸 누리와 함께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한다.


캐롤라인 M. 요킴 「사랑의 고고연대학」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사랑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솔직히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개념들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가지만 일정한 공간 안에서 그것도 허공에 떠서 바라보는 것으로 진행되는 시간 여행이 등장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블랙홀 내에서 겹쳐지는 시간 같은 것이 잠시 연상되었다.


말카 올더 「튼튼한 손전등과 사다리」

문어와 같은 두족류와 싱크가 되어, 그들의 기억을 이용하여 훼손된 산호초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난감하다.


엘리스 솔라 김 「이번 주를 기다리며」

“바텐더에게 끝내 쫓겨난 우리는 보도에 웅크리고 앉아 다시 뻘쭘한 상태로 돌아갔다. 웃음 주문이 풀리자 우리 표정은 녹아내리는 양초가 따로 없었다. 몸속에서는 쾌락을 주는 독약이 증발해 사라지고 그 대신 독을 품은 독약이 뼛속까지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다들 이튿날 아침에 출근이나 출석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최악은, 엄밀히 말하면 이튿날이 이미 오늘이라는 것이었다.” (pp.188~189) 실려 있는 소설들 중 가장 재미있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위의 문장에 나오는 바텐더를 두고 ‘덩치가 산 만했지만 뒤룩뒤룩한 근육이 꼭 종이 쇼핑백을 너무 많이 들고 가는 할머니’ 같다고 표현한다. 소설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타임 리프에 갇힌 보니의(영화에서는 빌 머레이) 이야기이다.


한쑹 「잠수함」

도시로 올라온 농민공들이 양쯔강의 잠수함에 산다는 설정이 사회비판적이다. 하지만 어느 날 잠수함에 불이 나지만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양쯔강의 잠수함은 그렇게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베어 「푹신한 가장자리」

일종의 범죄 소설의 양식을 띠지만 진행은 엉뚱하다. 살인자를 잡을 수 있는 도움을 경찰에게 줄 수 있지만, 범죄자를 가두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진 이가 있다. 일종의 윤리적인 문제를 가운데에 두고 이어지는 대화로 가득한 소설이다.


소피아 레이 「문에 얽힌 비밀 이야기」

소설 속 페루초는 ‘세계 대백과사전’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이러한 본업과는 상관없이 인물이나 문서를 창작하여 대백과사전에 슬쩍 끼워 넣는 일도 하고 있다.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폰다 리 「딥페이크 여자 친구 만들었더니 부모님이 나 결혼하는 줄 알더라(28세 남)」

넷플릭스의 시리즈물 <블랙 미러>의 시즌2의 두 번째 이야기 <돌아올게(Be Right Back>를 오늘 저녁에 봤다. 남편의 죽음 이후 남편이 생전에 남긴 SNS의 유적과 내 스마트폰에 남겨진 기억을 합성하여 새로운 남편을 창조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소설 속에서 딥페이크로만들어내는 가상의 여자 친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런 드라마가 될 것이다.


치넬로 온왈루 「망자가 했던 말」

어린 시절 숙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자신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은 아버지를 두고 고향을 떠났던 나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망자로부터 이런저런 말을 듣게 되지만 그것이 그녀를 충분히 위로한 것 같지는 않다. “... 문득 ‘재난’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이전, 우리의 삶이었다고 상상한 것을 향해 너무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려고 애쓰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과 우리 자신을 지금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일 텐데. 어쩌면 구원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서진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pp.336~337)


반다나 싱 「재회」

“... 인도 정부를 운영하는 입찰 전쟁에서 가이아코프가 방금 승리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미 신미합중국과 북극연합을 운영 중이었다.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 현 집권사인 울트라코프를 가볍게 꺾었다...” (p.361) 소설의 주요 이슈는 아니지만 글로벌 정치 회사가 있고 그들 정치 회사를 선택하여 나라의 운영을 맡긴다는 설정에 눈이 간다. 실제 소설은 환경 친화적으로 도시를 재생하는 마후아와 열대 우림으로 직접 들어가 보존을 꿈꾸던 라구의 평생에 걸친, 먼 거리를 뛰어 넘는 우정 내지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찰리 제인 앤더스 「아메리카 끝에 있는 서점」

새롭게 재편된 미국,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지역의 중간 지점에 ‘퍼스트 앤드 라스트 페이지’라는 서점이 존재한다. 이 서점의 진입로는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 양쪽에 있고, 서점 내부라도 각각의 지역에 속하는 쪽에서는 그쪽의 화폐를 사용한다. 이 서점은 몰리가 운영하고, 몰리에게는 피비라는 딸이 있다. 몰리는 아메리카 쪽에 속하지만 피비는 캘리포니아 쪽에서 놀다 오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이제 서점 안에 갇힌 이들은 평화롭게 토론을 벌인다.


토비아스 S. 버켈 「은하 관광 산업 지구」

관광을 온 외계인이 택시에서 뛰어 내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구인들은 이 사건을 숨기려고 하지만 티비는 외계인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고 만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전쟁을 벌이는 대신, 택시에서 뛰어 내리는 짜릿한 관광 행위에 동참학로 한다.


‘SF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를 위한 가장 환상적이며 결정적인 15편의 SF’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열다섯 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조너선 스트라한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라는 챕터가 기다리고 있다. SF 소설과 관련된 출판사와 편집자의 경향, 관련한 문학상 수상작과 수상자들에 대한 설명글이 실려 있다. 《레디메이드 보살》(카야프레스 펴냄)이라는 국내 작가들의 선집도 소개되고 있는데, 인터넷 서점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S. L. 황, 켄 리우, 테드 창 외 / 김상훈, 장성주, 박중서, 이동현 역 / 에스에프널 2021 Vol.1 (SFnal 2021 Vol.1) / 허브로 / 477쪽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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