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해도 포기할 수 없는 천황주의와 군국주의를 향한 반대를 위해...
“... 나는 아직 학생이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이 소설가는 변변한 현실 경험도 없으니 금방 쓸거리가 바닥날 거다. 아니면 요즘 젊은이처럼 기발한 변신을 도모할 요량이겠지, 하는 식의 야유를 듣곤 했다. 그래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때가 오면 ‘익사 소설’을 쓸 거다. 그 소설을 쓰기 위한 수련을 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로서 쓰기 시작해 강 아래 물살에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낸 소설가가 단번에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그런 소설······” (p.14)
깊숙하게 읽기에는 공력이 부족하였다, 라고 변명한다. 소설 속 소설가는 칠십대 중반인데, 육십여 년도 더 된 어린 시절, 단 하나의 장면에 아직도 집중하고 있다. 아버지가 강에 들어가 보트를 움직이려고 하고 어린 나는 배에 올라타려다 그만 둔다. 아버지는 결국 물에 빠져 죽었고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전후로 한 일을 쓰고 나서야 드디어 소설가로서의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쭈욱 생각해온 것이다.
“거대 현기증을 일으킨 후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발작처럼 현기증이 찾아오고 그다음에는 깊은 잠에 빠진다. 칠흑 같은 잠이다. 원래 최초의 거대 현기증 이후의 잠이 죽음이었다고 한다면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은 나에겐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그 경우 지금의 나는 죽은 이후의 내가 되는 셈인데, 아무튼 cogito, ergo sum, 이렇게 의식이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존재하는 셈이다.” (p.163)
어머니는 내가 ‘익사 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익사’는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따왔다) 작품을 쓰는 것에 반대하였고, 그래서 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모두 관련된 ‘붉은 가죽 트렁크’를 나로부터 보호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십년이 지난 현재, 드디어 나는 여동생으로부터 이것들을 건네받게 된다. 하지만 뚜경을 열자 드러나는 것은 그간의 ‘익사 소설’을 향한 꿈을 허사로 만드는 보잘 것 없는 결과물뿐이다.
“부엌의 작은 탁상시계가 아직 다섯시를 가리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이번에 도쿄에서 이곳으로 올 때 마키가 가지고 가라면서 싸준 커피메이커로 넉 잔 분량의 커피를 끓였다. 커피를 두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을 마사오와 이야기하게 되리라고 예감해서다. 일층 서쪽 구석에서 자는 릿짱과(우나이코가 함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층에서 자는 아카리는 두 시간은 더 지나야 일어날 것이다.” (pp.325~326)
오에 겐자부로의 분신이기도 한 소설 속의 소설가 ‘조코 코기토’는 그렇게 ‘익사 소설’의 창작을 포기한다. 하지만 소설은 계속 진행된다. ‘익사 소설’의 꿈과 함께 만났던 연극 집단, 그 중에서도 우나이코와의 연결은 유지된다. 나의 여동생인 아사는 우나이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 또한 우나이코가 진행시키고자 하는 관객 참여형의 연극에 나름의 방식으로 동참한다.
“... 코기토 씨는 보트로 올라타야 할 때 그 기회를 놓쳐(스스로의 의지로 거부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홍수로 불어난 강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코기의 환영이 아버지와 함께 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지요······ 저는 지금 방아쇠를 당겼을 때 외팔이지만 조준에는 실수가 없었고, 조코 선생님에게 씌어 있었던 혼령이 지금은 절르 새로운 ‘빙의자’로 맞이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미 너무나 늦었지만, 저는 함께 가겠습니다, 조코 선생님의 수제자는 누가 뭐래도 나, 기시기시니까!” (p.425)
소설에는 세 개의 큰 물결이 존재한다. 소설가인 조코 코기토가 완성시키고자 하였던 그의 아버지 조코 선생의 죽음, 소설가인 조코 코기토와 그의 정신적 문제를 지닌 아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우나이코가 진행시키고자 하는 연극과 어린 우나이코를 강간하였던 큰 아버지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현재가 그 세 가지이다. 소설은 각각의 문제가 시작되고 겹쳐지고 잠시 흩어지는 듯하다 다시 만나 폭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꿈속의 기억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두 개의 한자어다. 끊임없이 쏟아진 폭우는 엄청난 양의 물로 활엽수림을 채웠다. 그 물줄기는 숲을 울창하게森森 채우고 아득히淼淼 깊게 만들 터였다. 칠흑 같은 한밤중, 거친 바람에 미끄러져 쓰러진 자가 제 몸을 다시 일으킬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익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다이오 씨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훈련도장 바로 위쪽 숲은 혼마치 구역을 돌아 골짜기의 산으로 이어진다. 다이오 씨는 멈추지 않고 걸어, 새벽 무렵에는 경찰에게 추격당할 위험이 없는 장소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무성하게 우거진 풀숲에 고여 생긴 빗물 웅덩이에 얼굴을 담가, 선 채로 익사할 따름이다.” (p.427)
전쟁 말기 천황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어색한(?) 죽음을 둘러싼 노년의 소설가의 포기되지 않는 창작열은 천황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한 (모호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반대와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본다. 여기에 더하여 전쟁과 전쟁을 야기하는 사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사실, 그래서 모호한 반대를 뚜렷한 실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여성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은유까지도...
오에 겐자부로 / 박유하 역 / 익사 (水死) / 문학동네 / 445쪽 / 2015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