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지능 개체의 등장을 향한 인문학적 물음들...
직전에 읽은 켄 리우의 <사랑의 알고리즘>에는 “인간의 몸은 재현하기 힘든 불가사의이다. 거기에 비하면 인간의 정신은, 하찮은 농담이다.”라는 극중 인물의 대사가 등장한다. 그는 인공 지능을 가진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꽤 성공적이어서 텔레비전에 출연할 정도이다. 하지만 부부가 낳은 아이가 죽고 나자 아내 쪽은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인형은 계속 만들지만 다시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에이에프가 이쪽 길을 RPO 건물 쪽 길에 훨씬 더 많았다. 에이에프가 이쪽 길을 따라오다가도 두 번째 견인 구역 표지판을 지난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가서 우리 가게 앞을 피할 때가 많았다. 에이에프가 드물게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여지없이 걸음이 빨라지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는 등 뭔가 이상하게 행동했다. 어쩌면 우리를, 우리 가게를 부끄러워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창밖을 관찰하다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에이에프들이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거라고. 우리가 새 모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제 자기 에이에프를 처분하고 우리 같은 신형으로 교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거였다...” (pp.30~31)
가즈오 이시구로의 새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 등장하는 클라라는 에이에프이다. 에이에프 AF 는 Artificial Friend의 약자인데, 인공 지능을 가진 친구를 뜻한다. 클라는 에이에프 중에서도 B2 4세대의 모델이다. 하지만 이제 B3 모델이 나온 상태이고 그래서 클라라는 최신형 에이에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클라라는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람도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클라라한테는 특별한 면이 정말 많아요. 종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네요. 한 가지만 딱 집어서 말하라면, 관찰하고 배우려 하는 욕구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주위에서 보는 것들을 전부 흡스하고 합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 현재 클라라는 저희 매장에 있는 어떤 에이에프보다도 더 정교한 이해를 발달시켰습니다. B3도 물론 포함해서요.” (pp.69~70)
소설은 에이에프 판매점에서 시작되고 진열장에 있던 클라라는 조시라는 소녀로부터 기달려 달라는 말을 듣는다. 클라라는 나름 기다렸고 결국 조시와 함께 조시의 집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조시는 건강한 아이가 아니다. 이쯤에서 에이에프와 또 다른 근미래적 장치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향상된 아이‘라는 개념이다. 일종의 살아 있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한 버전 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시는 향상을 시도한 이후 아픈 아이가 되었다.
“나는 둥근 언덕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짝 건드렸다. 그 순간 둥근 언덕이 터지고 이불이 어둠 속으로 흩어지더니 방안이 조시가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p.264)
’향상된 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없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에 빗대어 상상할 수 있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 염기 서열의 일정한 부분을 자르고 다시 편집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슈퍼 휴먼을 만들 수 있는데, 소설 속의 ‘향상’은 유전자 정보의 조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p.442)
이번 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전작 중 《나를 보내지 마》(이 소설에는 복제 인간이 등장한다)와 마찬가지로 SF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에는 인문학적 물음이 담겨 있다. 인간의 육체를 빼닮은 인공 지능 개체의 등장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들(여기에서는 죽은 딸을 되살리고자 하는 욕구)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인공 지능이 인간의 마음까지 복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등의 윤리적 물음들이 그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 홍한별 역 /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 / 민음사 / 202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