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 《어디선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이야기를 매듭 짓고자 하는 명물허전의 상상력...

by 우주에부는바람

“... 나는 이야기에서 의식 업로드나 싱귤래리티(Singularity, 특이점), 포스트 휴머니즘 같은 소재를 많이 다룬다. 그러나 핵심만 놓고 보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난날의 지혜가 설득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선 이들은 상상도 못 했던 갖가지 선택과 직면한 시대에 한 개인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변하지 말아야 할/ 변하지 않아도 되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전통과 정체성, 문화, 가족, 사랑(이 경우에는 다양한 형태를 모두 망라하여) 같은 것들의 가치는 무엇인가? 아니면 우리 발밑의세상이 흔들리면서 그런 것들의 의미 자체도 변해 가는가?

내가 쓰는 이야기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그 이야기들은 등장인물이 불완전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살아남아서 꿈꾸고자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그러한 인물이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다른 아닌 이야기짓기이다.” (pp.8~9, <저자 머리말> 중)


켄 리우가 저자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자기가 쓰는 이야기에 대한 정리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에 진심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되바라진 의도를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머리말에서는 ‘도래할지도 모르는 미래’에 관해서 쓰지 않고 (아주 적극적으로) ‘도래할 리 없는 미래’에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호(弧)」

아이를 낳고 아이의 아빠는 떠나 보내고, 아이를 남겨 놓고 집을 떠나고, 길에서 만난 남자에게 다시 배신당하고, 길을 떠돌던 나는 어느 빌딩 앞에서 ‘보디워크스:’틀‘을 보여드립니다’라는 표지판과 함께 직원 모집 중이라는 문구에 홀려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신의 방부처리에서 시작하는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 과정을 직업으로 삼아 일을 시작한다. 나는 거기에서 서른다섯 살에 아트 디렉터로 승진하였고, 보디워크스의 창립자인 존 월러와 만나 부부가 된다. 존은 노화된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재생 신약을 만들고 나는 그 수혜자가 된다. 이제 보디워크스는 시신에 하는 작업을 거쳐 ‘죽은 이의 육신을 예술적인 추모비로 바꾸는’ 일 그리고 ‘젊음의 샘’이라고 부를 만한 재생 신약 판매라는 두 가지 사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존은 이미 가지고 있던 병으로 인해 죽었고 나는 남아서 존의 시신을 예술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는 존이 남긴 냉동 전자로 딸 캐시를 낳았고, 오래전 내가 낳은 아들 찰리가 나를 찾아온다. 캐시와 찰리는 쉰여섯 살 터울이 지는 남매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더 낳았고 ‘내 막내딸 세라는 내 큰아들 찰리와 같은 날’에 태어났는데 ‘다만 태어난 해는 찰리보다 100년’이 늦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스스로를 재생하는 작업을 그만두기로 한다. 딸은 말렸지만 나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한다. “내가 늙어 가다가 죽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다시 그리고 또다시 시작해야 하는 운명으로부터.” (p.61)


「심신오행(心神五行)」

타이라는 모선의 파괴로 우주를 떠돌다 어느 행성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류와 기원이 같은 듯하지만 원시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되고, 페이젠을 만난다. 인공지능인 아티를 통해 타이라는 이들이 지구에서 출발한 고대 우주선을 기원으로 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들은 체질에 맞는 쓴 약으로 타이라를 치료한다. 타이라는 회복되고 이 행성을 탈출할 작정이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타이라의 흔적을 좇은 다른 인간들이 행성에 도착한다. 인간들은 이 행성을 식민지화하려고 하지만 타이라는 이들이 사용한 오행의 치료 방법을 방패로 삼아 이들을 지켜내고자 한다.


「매듭 묶기」

키푸 또는 잉카매듭문자라고 불리우는, 줄의 매듭을 이용한 의사소통체계가 실제로 있다. 소설에는 이 매듭문자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 등장하고, 이들을 이용하여 신약을 개발하고큰 부를 획득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 소수 민족은 특허로 인한 가난의 악순환의 통로로 들어서고 만다


「사랑의 알고리즘」

“인간의 몸은 재현하기 힘든 불가사의이다. 거기에 비하면 인간의 정신은, 하찮은 농담이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나는 다 아니까.” (p.155) 나와 남편 브랜드는 사람을 닮은 인형을 만든다. 로라를 만들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에이미라는 아이를 낳았지만 태어나 91일밖에 살지 못했다. 이후 새로운 버전의 인형 에이미 이어서 타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에이미를 잃은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카르타고의 장미-싱귤래리티 3부작」

(‘싱귤래리티’는 특이점이라고 해석하며 보통 인공 지능이 인간 지능을 뛰어 넘는 지점 혹은 시기를 의미한다.) 에이미에게는 동생 리즈가 있다. 에이미와 리즈는 크게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리즈는 외향적이고 에이미는 내향적이다. 리즈는 여행을 좋아했고 회사에서도 세계를 누비는 일을 했다. 그리고 이제 리즈는 또 다른 여행, 육신을 버리고 정신만을 남기는 여행을 시도한다. 리즈의 정신은 두뇌 스캔이라는 결과물로 남았고 육신은 재가 되었다.


「만조(滿潮)」

만조가 될 때마다 탑 모양의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생활을 하는 나와 아빠. 어느 날 우주선으로 개조된 우리집은 달을 향해 발사된다.


「뒤에 남은 사람들-싱귤래리티 3부작」

싱귤래리티의 도래 후 죽음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잔류자’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잔류자들은 죽음 대신 데이터 센터로 업로드 되기를 선택한 이들이다. 어느 가족이 있다. 아빠는 업로드 되기를 바라고 엄마는 죽기를 희망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투지만 결국 엄마는 아빠에 의해 업로드 된다. 업로드 된 엄마는 남아 있는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세상은 변하고 죽기를 희망하는 자는 소수가 되고 대다수의 인간들은 업로드 된다.


「곁」

그러니까 이렇게 곁을 지킬 수도 있다. 나는 미국에 있지만 유럽의 병원에 있는 노모를 직접 간병할 수 있다. 나는 로봇의 눈을 통해 노모를 확인하고 간병인이 건네는 손톱깎이를 받아 원격 조정 장치를 통해 노모의 손톱을 깎는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싱귤래리티 3부작」

싱귤래리티 3부작의 세 번째 이야기는 데이터센터 내부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제 3차원은 없다. ‘20차원인 아빠의 모습은 이 4차원의 공간에 처음에는 조그마한 점으로 투영되었다가, 서서히 윤곽선으로 바뀌어 천천히, 환한 금빛으로, 하지만 살짝 흐릿하게 일렁거린다. 육체를 지닌 채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고대인‘이라고 부르며 이들은 수십억 명이다. 나머지는 이제 싱귤래리티 이후에 데이터센터에서 태어난 이들이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 고대인인 나의 엄마는 외계 행성으로 떠나고자 한다.


「달을 향하여」

달나라 이야기, 원숭이, 종교, 망명자가 고루 겹쳐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진실이라는 것을 향한 복잡한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중요한 건 맛의 균형이다. 중국인에게 운명이란 단맛과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마라 맛, 그리고 부드러운 위스키 맛을 한꺼번에 모두 맛보는 거다. 뭐, 사실 중국인은 위스키가 뭔지 모를 테지만, 그래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 거다.” (p.340) 아는 사람은 알아 들을 것이라고 여기며 진행되는 아메리카에 정착한 초기 중국인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으로 관우가 등장하는데, 삼국지의 바로 그 관우이다. 죽은 것이 아니고 사라진 것이라고 여겨지는 관우가 거듭거듭 살아 있다가 미국으로까지 건너왔다는 것인데, 음...


「내 어머니의 기억」

나는 지구에 있고 엄마는 우주로 떠났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나는 늙어가고 엄마는 더디 늙어간다.



켄 리우 (Ken Liu) / 장성주 /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Altogether Elsewhere, Vast Herds of Reindeer) / 황금가지 / 418쪽 / 2020 (2002~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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