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소와 주제 씨를 연결하는 문, 주제 씨와 세상을 연결하는 이름...
주제 씨는 등기소의 보조서기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제 씨는 등기소에서 가장 말단에 위치한다. 보조서기원의 위로 정식 직원들이 위치하고, 정식 직원들 위에는 세 명의 부소장이 있다. 그리고 등기소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소장이 있다. 주제 씨는 등기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고 있는데, 그 방에는 등기소로 연결되는 문이 하나 있다. 주제 씨는 밤이면 그 문을 이용하여 등기소로 다시 들어간다.
“... 그 신상 카드는 서른여섯 살 된 여자의 것이었고 한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이혼 기록이 등재되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신상 카드는 등기소에 수천, 수만 장이 있었다. 주제 씨는 어떻게 이 서류가 자신의 손에 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류를 골똘히 바라보았지만 한편 그것은 공허하고 황당한 시선이기도 했다...” (p.33)
주제 씨는 그렇게 들어간 등기소에서 유명인들의 서류를 가지고 와서 복사본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출생의 기록을 비롯해 결혼과 이혼과 죽음 등 다양한 기록을 모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훔쳐 가지고 나온 서류에 낯선 여인의 기록이 하나 끼어들게 된다. 주제 씨는 다른 어느 것보다 바로 그 여인의 기록의 무게를 크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여인의 행적을 찾는, 등기소 밖에서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 규정을 기록해 놓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엄격히 지켜져 왔던 것처럼, 건물에 가장 늦게 들어서는 사람은 항상 소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제 씨의 그 미지의 여자에 대한 사건만 없었어도, 이것은 정말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등기소 생활의 의문 중 하나였다. 어떻게 그 혼잡한 시내의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원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출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먼저 나이에 상관없이 보조서기원들이 도착해서 문의 개폐를 담당하는 부소장을 기다리고, 다음엔 직급순으로 정식직원들이 출근하고, 다음엔 고참 부소장이,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마음속으로 반기지 않는 소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p.145)
소설의 한 축이 주제 씨의 그 이름 모를 여인을 찾는 여정에 할애되어 있다면 소설의 또다른 한 축은 등기소라는 장소와 그 등기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그리고 그 등기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록이 미로처럼 뒤섞인 공간은 촘촘하게 엮인 상하 관계를 통해 유지되고 있지만, 어느 날 최상위 포식자라 할 소장과 말단인 주제 씨의 단계를 뛰어 넘는 유대로 틈이 발생하게 된다.
“... 만약 보조서기원들 중 누군가, 주제 씨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인한 순간적 착각으로 쇼제라고 기입한다면, 나중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결혼, 이혼, 죽음, 두 가진 어떻게 피해볼 수도 있지만 나머지 한 가진 결코 피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일들을 적어 넣기 위해 엄청난 수고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제 씨는 자신에게 맡겨진 새로운 생명들을 확인하는 그 작업에 있어서만은 한 자 한 자를 조심스럽게 써가고 있었다...” (p.169)
주제 씨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사고 방식과 구체적인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 힘든 선택으로 소설은 겨우겨우 진행된다. 지루하고 낯설 수 있는데 위와 같은 작은 유머들이 군데군데에서 힘을 발휘한다. ‘모든 이름들’(은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의 원제이다)의 집합소인 등기소를 발현의 근원으로 삼은 사유가 주제 씨를 따라 (혹은 주제 씨를 획책하여) 거리를 돌고 돌아 다시 등기소로 돌아오는 여정에 힘을 보탠다.
“...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그의 조사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단지, 일층집의 노부인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나, 학교에 잠입한 것이나, 이것저것들을 물어보러 약국을 찾아갔던 것이나, 죽은 자들의 기록부를 보관하고 있는 등기소를 둘러보았던 것과 별다를 게 없는,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그를 들판의 끝으로 이끌었던 인상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었다. 그녀는 죽었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죽은 사람인데 어떡하겠어...” (pp.243~244)
책을 읽는 동안 주제 씨의 선택들에 공감하지 못하였다. 작가가 그러한 공감을 원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에 주제 사라마구, 자신의 이름 주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도 마냥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요사이 새 책들을 잔뜩 사들였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책장 한 켠에서 주저하고 있던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선택에 어떤 알 수 없는 의미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주제 사라마구 José Saramago / 송필한 역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Todos os Nomes) / 해냄 / 297쪽 / 2008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