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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3. 2024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별의 시선 보내고 있지 않은지 누누이 살펴봐야 하는 이유...

*2021년 3월 2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야권의 서울 시장 후보가 결정되었다. 국민의힘의 오세훈과 국민의당의 안철수가 맞붙었는데 결국 오세훈의 손이 올라갔다. 어제 안철수는 한 극우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하여 민주당 서울 시장 후보인 박영선을 ‘도쿄에 아파트 가진 아줌마’라고 표현하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표현은 차별적인 언어가 되고 말 수도 있다. 정치인은 사실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최소한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는 있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 때도 있는 게 아닐까?” (p.7)


  안철수는 이후 다른 자리에서 아줌마 표현의 부적절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저는 집 없는 아저씨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인 것 같은데 그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신과 배우자의 재산으로 1천 551억 원을 신고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천오백억 원의 재산을 가진 ‘집 없는 아저씨’인 것인데, 그 말을 웃으며 농담처럼 하였다니, 참으로 안철수의 센스란...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개선되었는가에 대한 설문에, 백인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고, 흑인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꾸준히 나타난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전망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손실의 가능성과 이익의 가능성 가운데 손실의 가능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회피편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을 반영하듯, 미국사회의 인종차별 개선은 특권을 잃는 백인의 입장에서 흑인보다 더욱 크게 체감한다.』 (p.35)


  그런가하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김종민은 오세훈의 시장 시절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보상금 문제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린벨트 해제는 엄청난 수익 생기는 일... 남성을 여성으로, 여성을 남성으로 성별 바꾸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있다.” 두 명의 성소수자의 죽음이 바로 얼마 전에 있었다. 차별을 조정하고 혐오를 없애는 일에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은 외려 차별을 고착화시키고 혐오를 이용한다. 그러고 보니 안철수는 퀴어 축제에 대해 엉성한 반대의 입장과 함께 퀴어 특구라는 요상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카스티야와 스티븐 버나드는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실제로 더 공정하게 행동하는지 실험했다. 만일 이들이 진짜로 공정하다면 동일한 성과를 보인 남녀 직원에게 동일한 성과급을 책정할 것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달랐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남성에게 더 우호적이고 여성의 성과급을 더 낮게 책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능력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남성에게 우호적인 경향이 덜했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불공정할 수 있다니 왜일까? 자신이 편향되지 않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에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브누아 모닌과 데일 밀러의 실험에서도 성차별적인 발언에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성차별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 남성을 선호하는 행동을 더 거리낌없이 표출했다.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기에 더욱 편향되게 행동하는 이 현상을 카시트야와 버나드는 “능력주의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pp.111~112)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자행하는 차별을 포함하여―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만연화 되어 있는 차별의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모습을 다양한 이론들로 설명하고 있다. 계속해서 차별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속도를 늦추고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와 신념에 대한 포용과 관용이 평화와 공존의 기초임을 깨달았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종교가 다수가 되든지 상관없이, 누구도 종교를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채택했다. 특정 종교의 신념체제로 국가를 지배할 수도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평등권·차별금지)와 제20조(종교의 자유·정교분리)도 마찬가지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며 배척하는 주장은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에 반한다. 최소한 종교적 신념이 타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p.130)


  국가인권위회법에 나열된 차별금지사유는 다음과 같다.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 혹시 내가 바로 이러한 사항들을 가지고 눈앞의 누군가를 향해 차별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 않은지 누누이 살펴볼 일이다. 



김지혜 / 선량한 차별주의자 / 창비 / 243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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