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3. 2024

손홍규 《다정한 편견》

우리 사회의 비루한 구석을 살피며, 절묘하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다정한 편견》은 2008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에 실린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다정한 편견’이라는 제목은 직전에 읽은 책 제목인 ‘선량한 차별주의자’ 만큼이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과거에 까페 여름의 후배와 대화를 주고받다가 등장한 ‘친절한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을 두고 한참 웃은 적이 있는데, 그것과 결은 다르되 두 제목 모두 입에서 자꾸 오물거리게 되는 표현들이다.


  “며칠 전 봄비가 내렸다 일기에 무심한 터라 이번에도 속절없이 비를 맞을 판이었다. 사람들의 가방 위로 삐죽 솟아나온 우산 손잡이를 보고도 준비성 철저한 그들을 부러워만 했을 뿐이다. 나는 지하철 출입구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어두운 하늘을 비긋이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흑백사진 같은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토요일 오후였고 비가 내렸다. 나처럼 우산이 없는 녀석들만이 하릴없이 복도를 서성이며 비그이를 했다...” (p.16)


  자신이 시골 출신이고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는 작가가 사용하는 도회적이지 않은 단어들 앞에서 자꾸 멈춰 선다. ‘비긋이’는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라는 뜻인데 뜻을 알지 못해도 어림짐작 할 수 있다. ‘비그이’라는 단어 또한, 비를 잠시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는 일, 이라는 뜻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말이다. 언젠가 한 번 ‘비그이’라는 말을 써보고 싶다, 라는 생각 들게 만든다.


  “생긴 건 여축없이 시골머슴인데 하는 짓은 좀생이라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이 내 본래면목을 보게 되면 고개를 갸웃 기울이곤 한다. 아직 소설가라는 꼬리표를 달지 못했던 문청 시절 나는 문인들이 모인 어느 술자리에서 지금은 원로가 되신 어떤 소설가의 말씀을 경청했는데 그이는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발싸심을 하며 취재를 다녀야 했는지를 털어놓았다...” (p.42)


  ‘여축없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기 위해서는 ‘깔축없이’라는 단어를 거쳐야 한다. ‘여축없이’는 ‘깔축없이’라는 말의 방언이기 때문이다. ‘깔축없이’는 ‘조금도 축나거나 버릴 것이 없이’라는 뜻이다. ‘발싸심’은 팔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비틀면서 비비적대는 짓,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들먹거리며 애를 쓰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위의 문단에서는 두 번째 의미를 사용되었을 것이다.


  “... 시인은 어린 시절 깜박 잠들었다가 저녁 무렵 깨어나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달려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혼곤한 낮잠에 빠졌다가 저녁 무렵 깨어나 아침으로 착각하여 황급히 책가방을 챙겨 대문을 나서던 일을. 나도 그랬다. 물론 대문을 나서는 순간 어머니에게 꼭뒤를 잡혀 끌려 들어오기는 했지만...” (pp.66~67)


  ‘꼭뒤’는 뒤통수의 한 가운데 부분, 을 의미하는데 ‘꼭뒤’라는 단어 자체에 정감이 간다. 실은 비슷한 의미로 지금까지는 ‘뒤꼭지’라는 단어를 써온 것 같은데, 실은 ‘뒤꼭지’는 바로 이 ‘꼭두’의 전라도 방언이다. 작가는 정읍 출신이고, 나는 비록 그쪽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고향이 부안이고 엄마의 고향이 바로 근처인 김제이다. 어린 시절의 매년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을 그곳에서 보낸 바 있다.


  “처음에 ‘짓다’라는 낱말은 단지 ‘집을 짓다’라는 의미로만 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밥을 해먹는 일도 집을 짓는 일만큼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밥을 짓다’라 쓰게 되고 또한 옷을 입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므로 ‘옷을 짓다’라 쓰게 되고 또한 옷을 입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므로 ‘옷을 짓다’라고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집이 먼저였는지 밥이 먼저였는지 혹은 옷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서야 어떻든 ‘짓다’라는 낱말이 의식주와 관련이 있다는 건 집과 밥과 옷이 삶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p.140)


  명사가 아니라 위에서처럼 ‘짓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우리네 삶을 두루두루 살펴 절묘하게 응축시켜 보여주는 방식도 좋다. 사실 이런 아름다운 표현들을 가지고 작가는 우리 사회의 비루한 구석을 살피고 있기도 하다다. 작가가 칼럼을 연재한 시기는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였다. ‘다정한 편견’이라는 제목은 책의 네 번째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데, 바로 그곳에 그러한 글들을 부러 모아놓고 있다. 



손홍규 / 다정한 편견 / 교유서가 / 293쪽 / 2015 (2015) 

매거진의 이전글 천운영 《쓰고 달콤한 직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