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최적화된 주제를 표적으로 삼아...
2015년에 발표한 미셸 우엘벡의 여섯 번째 소설인 《복종》이 출간되던 날,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이 있었다. 《복종》에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정권을 잡는 이슬람교 기반의 정당이 등장하였는데, 이것이 현실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비슷하게 작가의 일곱 번째 소설인 《세로토닌》에는 목축업자들의 총기 시위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농촌 지역의 지지를 받은 ‘노란 조끼 시위’와 매칭 되면서 화제를 이어갔다.
“... 캅토릭스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신기능호르몬에 관한 정보들은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세로토닌은 자아존중감과 그룹 내 타인의 인정과 관련이 있는 호르몬으로, 한편 주로 위장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며 아메바를 비롯한 다수의 생물체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의학기술은 여전히 모호하고 막연한 분야이며, 항우울제는 우리가 정확한 원리를 모르는 채로 우리의 체내에서 작용하는(또는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수많은 약물 중 하나라는 결론만이 점차로 굳어졌다.” (pp.108~109)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나는 마흔 여덟 살의 백인 남성인 플로랑클로드 라브루스트이다. 나는 농업대학을 나와 몬산토라는 다국적 농산물 기업에 근무하다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노르망디 지방의 치즈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기 위해 지방 정부로 적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로 판명이 났고, 나는 최근까지 농산부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해왔다.
『... 물론 클레르도 외롭게 죽을 터였다. 그리고 불행하게. 하지만 적어도 가난하게 죽지는 않으리라. 아파트를 팔면 현 시세로 미루어 나보다 세 배는 더 많은 돈을 소유하게 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그녀의 부친은 공증증서 작성과 담보 등기라는 단순한 부동산 행위 하나로, 내가 근 사십 년의 세월 동안 힘겹게 모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번 셈이었다. 노동은 결코 돈으로 보상된 적이 없었다. 그 둘은 엄밀히 말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떤 인간사회도 노동에 대한 보상을 토대로 건설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미래의 공산 사회도 그 원칙에 기반을 두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는 부의 분배원칙을 다음의 공허한 말로 요약했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혹여 우리가 그의 말을 실행에 옮기는 불행이 일어났더라면 끊임없는 억지와 궤변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나, 다행스럽게도 나머지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산국가에서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돈이 돈을 부르고, 돈에 권력도 따른다. 그것이 사회조직의 최종 결론이다.』 (pp.157~158)
쇠락해가는 프랑스의 농업과 그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과 이들을 근거리에서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주인공이라는 설정만 보자면 사회성 짙은 소설로 치부할 수 있지만 실상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소설의 제목인 ‘세로토닌’에서 유추할 수 있듯 나는 인위적으로 세로토닌의 촉진을 돕는 항우울제 캅토릭스를 복용 중이다. 소설은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우는 세로토닌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물인 나의 사적인 면모를 다루는 데에도 꽤나 적극적이다.
“지난 오십 년 이래로 프랑스에서 농부들 수가 대폭 감소했지만, 아직도 충분히 줄어들지 않은 거야. 아마 유럽 표준, 덴마크나 네델란드 표준에 이르려면 아직 반이나 삼분의 일로줄어야 할걸. 덴마크나 네델란드 얘기를 꺼낸 건 우리가 지금 유제품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예를 든 거고, 과일의 경우엔 모로코나 스페인이 되겠지. 어쨌든 프랑스 낙농업자 수는 현재 육만을 조금 웃도는데, 내 생각에 십오 년 뒤에 이만 정도가 남을 것 같아. 말하자면 작금의 프랑스 농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지만, 은밀하고 보이지는 않지. BFM에 뉴스거리 한번 되지 못하고 그저 자기네 동네에서 각자 조용히 사라지고 있으니까.” (pp.288~289)
이 과정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고 지탄을 받을만한 자극적인 묘사들이 다량 등장한다. 스물 일곱 살에 만난 클레르나 덴마크 출신의 지적인 여인인 케이트는 오랄 섹스의 달인처럼 묘사되거니와 직전까지 동거를 했던 스무살 연하의 일본인 유주는 그룹 섹스와 수간의 장면을 비디오로 남긴다. 어쩌면 유일하게 현실성 있는 미래를 도모할만한 여성이었던 카미유는 나의 실수로 떠났고, 나는 이제와 먼 발치에서 그녀를 살핀다.
“모든 것이 존재하고, 존재하기를 요구하며, 그렇게 상황들이 중첩되면서 더러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인자가 되어 결국 하나의 운명이 완성된다...” (p.346)
작가의 초기작들에 흠뻑 빠졌던 데에 비하여 최근 작품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반감이 든다. 이슬람교를 향하여 인종주의라는 편견을 우회하며 정교하게 조성된 공포의 낙인을 찍는 듯하였던 전작 《복종》을 왠지 찜찜하게 읽었는데, 작가가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며 트럼프를 미국 최고의 대통령 중 한 명이라 추켜세웠다는 기사를 읽으면서는 고개를 내두르게 되었다.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최적화된 주제를 표적으로 삼은 그의 소설들을 읽지 않을 수도 없고, 참나...
미셸 우엘벡 Michel Houellebecq / 장소미 역 / 세로토닌 (Sérotonine) / 문학동네 / 413쪽 / 2020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