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외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 해를 건너뛰어, 다시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가리키려...

by 우주에부는바람

이승우 「마음의 부력」

부력, 기체나 액체 속에 있는 물체가 그 물체에 작용하는 압력에 의하여 중력(重力)에 반하여 위로 뜨려는 힘. 마음의 부력라고 할 때, 그 마음에 작용되는 힘은 무엇이고 그 마음에 작용되는 힘에 반하는 힘은 또 무얼까. 어머니와 나보다 한 발 앞서 세상을 등진 형, 그리고 이제 그 형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그 형의 목소리와 나의 목소리를 헷갈려하는 어머니가 있다. 작가는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 그리고 이들의 어머니인 리브가의 이야기를 나와 형과 어머니의 이야기에 빗댄다. 신학대학 출신의 작가가 데뷔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애용하는 ‘신학’이라는 뿌리가 이 소설에도 이어진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일 게다.


이승우 「부재 증명」

작가가 ‘자선 대표작’으로 뽑아서 실은 <부재 증명>은 2002년 출간된 작품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에 실려 있다. 그 소설을 읽고 나는 『"...가면을 쓴다는 것은 주체 숨기기지만, 여러 개의 아이디를 갖는다는 것은 주체의 분열에 가깝다..." 왼손잡이 동호회의 회장, 외삼촌, 그리고 옛애인인 미경은 한결같이 남천이라는 곳에서 나를 봤다고 알려온다. 도통 움직임 없이 자신의 거처이자 사무실인 곳에서 여러 개의 아이디로 여러 개의 사이버 공간에 글을 올릴 뿐인 나는 그런 지명을 가진 곳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주위에서의 강력한 증언들은 결국 나를 남천으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남천에서 꼼짝없이 살인자로 몰리고, 여러 사람들이 남천에서의 나를 증명해줌으로써 그러한 의혹은 사실이 되어버린다. "...나를 빼놓고 구성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확실하고 완벽한 부재 증명을 통해서만 겨우 성공할 수 있는 나의 불안정한 존재 증명..." 꽤나 심도 깊은 아이러니가 책에 실린 소설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라고 짧은 리뷰를 남겼다.


박형서 「97의 세계」

만약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보았다면 보다 쉽게 소설의 전개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톰 크루즈가 1박이 포함된 하루 정도의 시간이라는 타임 루프에 갇혀 있다면 박형서의 <97의 세계>의 주인공은 97초라는 타임 루프에 갇혀 있다.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대형 복합 쇼핑몰에서 발생한 폭발, 그리고 그 폭발의 순간 자신과 떨어져 있던 아이의 죽음이라는 타임 루프의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루트는 무엇이어야 할까. 다른 사람을 구함으로써 나의 아이의 죽음을 방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이 나의 아이를 구하는 일이 되도록 만들 방정식은 정녕 발견이 될 것인가. 우리의 세태를 반영하는 고차 방정식의 은유가 난무한다.


윤성희 「블랙홀」

소설 <블랙홀>을 읽다 보면 영화 <결백>과 영화의 모티프가 된 농약 막걸리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을 것이다. 농약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한 엄마는 그 결과로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 엄마로 하여금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도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 시골에 내려간 부모님이 구입한 집에 깃들어 있다는 귀신이 원인인 것일까, 아니면 거슬러 올라 아버지와의 결혼이 그 원인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엄마를 버리고 엄마에게 배다른 동생을 만들었던 엄마의 아버지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장은진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그해, 가을 날씨는 그녀의 눈동자를 닮아있었다. 아니, 그녀의 눈동자가 가을을 닮아있었다. 분명, 가을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추거나 모조리 흡수하는 듯한 눈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녀 눈의 사계를 알지 못한다. 봄에는 무슨 빛깔로 피어나고, 여름이 되면 얼마큼 나른하게 풀어지고, 고개 들어 흩날리는 겨울 눈송이를 바라볼 때는 어떤 깊이로 시리게 빛나는지. 가을, 오로지 그 한 계절만 알 뿐이었다...” (p.220)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러고도 한참동안 그녀의 눈동자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 진부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가 남긴 빚과 신경쇠약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동생. 문학은 늘 삶을 노래하지만 삶은 문학으로 영위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자 문학이야말로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첣무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234) 나는 문학을 접었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내가 직접 루마니아 작가를 번역하여 보여주었던 그녀는 루마니아로 떠났고 그곳에서 얼마전 죽었다. “주차장 차 밑에서 얼룩덜룩한 게 튀어나와 반대족에 주차된 차 밑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걸음을 멈췄다. 경계하듯 바퀴 뒤에서 한참 두리번거리다 옆 차량으로 자리를 옮길 때 유심히 살폈다. 짧은 꼬리 끝이 살짝 꼬부라져있었고, 등에 특별한 하트 문양을 짊어졌는데 그 검은 문양이 조금 크고 또렷했다. 살아있었구나. 태어날 때부터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녀석이 자동차 밑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봄의 눈동자였다.” (p.255)


천운영 「아버지가 되어주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 네 말대로라면 내 인생 참······. 슬플 거 가어.” (p.264)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엄마가 자꾸 떠올랐다. 요즘 엄마는 엄마의 딸인 여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다. 여동생은 엄마의 인생을 가여워하며 짜증을 부리고 있다. 그런 여동생의 짜증을 들을 때 엄마의 심정이 저렇겠구나 싶은 부분을 발견하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쨌든 아버지는 엄마의 선택이었고, 그렇게 한 평생, 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긴 세월을 두 사람은 부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는 것을 피하라고, 여동생에게 언질 해야지, 마음먹었다.


한지수 「야夜심한 연극반」

“나는 엄마 몰래 살아남아 기어코 세상에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짐이 되어 살아남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사라졌다. 인터넷 세상에 오 분짜리 인생을 남긴 채, 추레해져갈 자신을 내게 떠넘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 (p.303)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며 일본으로부터 날아온 ‘야夜심한 연극반’이라는 제목의 오 분짜리 영상을 보며 나는 이제 일본에서 아버지가 생활하고 있었다는 우투로 마을을 찾아간다. 그리고 내가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버려지게 된 머나먼 사연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설정이 드라마틱한 것은 사실인데, 엄마가 된 아버지라는 이야기와 우투로 마을이라는 배경이 맞춤 맞게 얽혀들지는 않는다.



이승우, 박형서, 윤성희, 천운영, 한지수 / 마음의 부력 :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 367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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