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웰링턴과 정지돈이 바통을 주고 받으며 체코에서 체코로...
정지돈의 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한 인물인 현앨리스를 통하여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낸 인물들을 조망하고자 한, 정병준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이라는 책을 통해 비로소 가능했을 것이다. 정웰링턴은 현앨리스의 아들이지만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 책은 현앨리스의 조부모로부터 아들인 정웰링턴에 이르는 4대를 다루어야 했다.
“정웰링턴은 하나의 삶을 가지지 못했고 하나의 국가도 가지지 못했다. 정웰링턴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그를 오해하거나 경계했고 사랑해도 일부분만 받아들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아무도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p.7)
작가 정지돈은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을 읽고 정웰링턴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해야 하겠지만 무슨 연유인이 알 것도 같다,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정웰링턴의 삶이 갖는 유별난 개별성이 작가를 자극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작가 정지돈이 좁디좁은 한국의 문단 내부에서 어떻게든 유지하고자 하는 개(별)성적 형식(실험)이 정웰링턴의 삶과 맞닿아 있지 않다고 말하기 어려운 탓이다.
“... 그는 중세 시대의 수도승처럼 행동했고 비정상적으로 깨끗했으며―그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겨드랑이에 코를 박아도 냄새를 맡지 못할 때도 있었다―어떤 경우에는 유리처럼 느껴져 보이지 않았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안나의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p.23)
미국에서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난 정웰링턴은 태생적으로 투철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하면서 그 경우지로 체코를 선택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북한 입국을 거부당하였고, 그렇다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체코에서 체코의 여인과 결혼했고 학교를 졸업했으며 딸을 낳았고 헤프라는 지역의 의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아직 삼십대이던 어느 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증언이다. 남아 있는 자료는 아주 적고 그마저도 건조하고 불투명하다. 나는 가능한 한 가까운 거리의 자료를 토대로 정웰링턴의 삶과 감정, 생각에 대해 상상했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무엇도 추리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거나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진실 속에서 그들은 모두 역사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말과 생각은 흩어져 있는 자료와 이미지, 텍스트가 나와 나의 경계를 경유해서 씌어진 것이다...” (p.134)
소설의 앞부분은 연약하게나마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정웰링턴이 체코에서 만난 사람들과 체코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아내가 되는 안나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친구들과 자신이 감시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미래를 전망함>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134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다큐멘터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제 바통은 정웰링턴에서 정지돈에게로 넘어가고, 정지돈은 현재 시점의 체코에 있다.
“모든 소설은 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우연적인) 이유가 있다. 작가는 어떤 한계에 의해서 그렇게 쓴다. 다시 말해 소설이 특정 형태가 되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포기에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해낸 것보다 해내지 못한 것을 봐야 한다...” (p.150)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 앞부분과 여행기의 형식을 띠는 뒷부분으로 확연히 나뉘지만 작가는 그것이 구별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순차적이지 않은 기억과 생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고 하는데, 소설의 앞부분은 이에 충실하다. ‘나는 하나의 글에서 곧장 다른 글로 넘어갈 수 있고 그것들의 상호 연결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적 형식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는데, 소설은 그렇게 앞부분에서 뒷부분으로 넘어간다.
정지돈 / 모든 것은 영원했다 / 문학과지성사 / 212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