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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김괜저《연애와 술》

결혼 이후 아내는 여간해서는 더이상 술에 입을 대지 않는다...

  아내와는 대학 때 캠퍼스 커플이었다. 요즘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복학하고 아내가 이학년일 때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었는데, 연애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문학회 선후배로 엮여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술이 세지도 않았지만 연애를 하면서 나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술을 마셨(을 것이)다. 둘이 마시기도 했고 다른 이들을 포함하여 마시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술을 따라놓고 마시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잔을 끝까지 비우는 데 아무런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술친구들은 알고 있다. 술을 따르지도 않고 그냥 병째 놓고 굴비처럼 보기만 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한다... 술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덜 마시게 되고, 사놓고 안 마시면 안 마실수록 술이 좋아진다. 이건 나의 오래된 술 좋아하는 방식이다.” (p.22)


  당시 나의 시간은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과 술을 마시는 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잘(?) 균형이 잡혀 있었다. 술을 마시는 시간 쪽으로 확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후배인 아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가 학교를 바꾼 다음에는 그쪽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일시적으로 술을 마시는 시간이 확 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년제 문학창작과였다.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평생, ’잘하지는 못하는데 할 줄은 알아요‘ 같은 식으로 설명해왔다.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인쇄물 편집을 하고 로고를 만들기도 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니지만 운 좋게 사진 일을 할 기회가 있네요.

잘하지도 못하는데 꼼수로 이렇게 하고 있다는 자책. 끝없는 연습이 필요한 일을 시시덕거리며 하고 있다는 죄책감. 진지하게 재대로 하고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곧잘‘ 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것들의 목록은 점점 길어졌다.” (p.61)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과 술을 마시는 시간으로 나눌 때 균형이 잡혀 있다는 것이지 만약 술기운이 사라진 시간과 술기운이 남아 있는 시간으로 나눈다면 후자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시절이었다고 실토해야겠다. 나는 언제나 완전히 깨기 전에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금주의 시간이 있은 다음에 술을 마시면 술이 내 몸의 내부 어디쯤을 흘러가고 있는지 세심하게 느낄 수 있었다.


  『10년 전, 소설 쓰기를 배울 때 나는 코엔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글을 계속 쓰라고 하는 건가요? 세상에는 잘 쓴 글이 이미 너무 많아서 의욕이 안 나요.”

코엔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매일 아침에 점심 샌드위치 도시락을 쌉니다. 이 샌드위치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가 아닌데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샌드위치를 싸느니 자살을 하는 편이 낫겠죠.”』 (p.64)


  그렇게 결혼하기 전 팔년 여의 연애 기간 동안 아내는 내 술자리에 동행하는 수고를 감내했다. 홍대 앞과 신촌을 거쳐 남산 아래에서 주로 마셨지만 후에는 강남에서도 신천에서도 자주 마셨다. 그런가하면 남해금산 근처 어느 해수욕장의 텐트 안에서도 마셨고, 새벽에 내린 동해역 앞의 허름한 식당에서도 마셨고, 부산의 온천장에서 일하던 후배의 빌라에서도 마셨다.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장면에 웃을 때 나는 살 것 같다. 네가 내 얘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릴 때 나는 살 것 같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네가 날 보고 웃으면 그걸로 나는 살 것 같다. 그런데 네가 나를 보고 웃지 않으면 아마도 나는 죽을 것 같다.” (p.152)


  아내는 결혼 초 혼술을 하는 내게 번데기를 찌개처럼 끓여주었고, 밥상에 자신의 술잔을 올려놓기도 했지만 내가 몇 잔 하는 사이 꾸벅꾸벅 졸다가 스르르 자러갔다. 연애의 기간과 결혼의 기간을 합치면 삼십 년이 되어간다. 이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밤에 술을 마시고, 아내는 렌지에 돌리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닭똥집을 매주 금요일 한 개 구매한다. 다른 건 대량으로 구매하는데, 그것만은 딱 하나씩만 구매한다. 결혼을 한 이후로 아내는 여간해서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김괜저 / 연애와 술 / 시간의흐름 / 218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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