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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김소연 《그 좋았던 시간에》

잘 기억해야 제대로 기약할 수도 있는 어떤 시간들...

*2020년 12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시인이 쓰는 산문들을 좋아한다. 문장을 읽다보면 저절로 어떤 리듬에 실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물론 소설가들이 쓰는 산문들이라고 마냥 저어하는 것은 또 아니다. 리듬감을 대신할만한 다른 요소들 그러니까 풍부한 형용 묘사나 순탄하면서도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내포한 이야기 내지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이어지는 논리가 있으면 좋아한다.


  “타만 네가라는 짐작보다 좋았다. 통나무 숙소 맞은편에는 말레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밀림을 한참 동안 올라가면 옛날 방식대로 살고 있는 고산족도 만날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지만, 매일 다른 동물과 곤충과 새를 만났다. 매일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어제의 카멜레온이 스르르 지나간 자리에서 오늘은 전갈이 꼬리를 곧추세우고 서 있었다. 나무들은 매일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주었고 매일 다른 햇살에 자기 몸을 씻었다.” (p.15)


  그래도 최근에는 시인의 산문이 더 좋다.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최대치가 점차 줄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시인의 산문에서는 중간중간, 희석되고 있는 내 정신에 한 번씩 가해지는 원액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무들은 매일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주었고 매일 다른 햇살에 자기 몸을 씻었다‘라는 문장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면 나는 또 힘을 내어서 멈추지 않고 내처 다음 페이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뛰어다니며 놀았다. / 바람이 불지 않아서, 바람을 만들며 뛰었다. // 놀고 있으면 바람이 따라왔다...” (p.41)


  책은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마련되었다. ’그 좋았던 시간에‘라는 제목은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여행의 시간을 지목한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인간을 만나며 다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였던 그 시간을 회고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분명 그런 시간이 있었을 터여서, 작가도 우리도 이제는 차마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터여서, 터무니없는 공감의 마음이 생긴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시골 마을을 발견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할아버지와 자그마한 와사비소금 한 병을 소중하게 포장해주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런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는 그런 할머니로 늙어가야지 하며 빙그레 웃었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 속 어묵을 꺼내고 무 반토막을 꺼내어 멸치 우린 물에 넣었다. 팔팔 끓여 푹 익힌 어묵과 무를 와사비소금에 찍어 먹었다. 그 다음날도 먹었다.” (p.122)


  페이지 사이사이에 작은 사진들도 실려 있는데 작아서 아쉽다. 아쉽다가도 사진만큼이나 소소한 이야기들에 오히려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며 안도한다. 괜스레, 지난 시간, 나와 우리의 여행이 기록된 사진을 찾는 수고를 한다. 빈 의자와 빈 바닷가를 번갈아 찍은 사진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소리 없이 흔들리기만 하는 야자수에게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길어낸다. 작열하는 빛의 정적 속에 고요하게 누워 있던 고양이를 떠올린다.


  “결속력 없이도 행할 수 있는 다정한 관계, 목적 없이도 걸음을 옮기는 산책, 무용한 줄 알지만 즐기게 되는 취미생활, 이름도 알지 못하는 미물들에게 잠깐의 시선을 주는 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싱거운 대화, 미지근한 안부. 식물처럼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일. 인연이 희박한 사람, 무관한 사람, 친교에의 암묵적 약속 없는 사람과 나누는 유대감. 이 수수한 마주침을 누리는 시간이 나는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사람은 목소리와 표정과 손길로 실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245)


  코로나 후 1년이 되어간다. 코로나는 마치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경계 같다, 거대한 담벼락 같다. 코로나 이전의 이런저런 행위가 실재하였던 것인지 희미하다. 코로나 이후의 이런저런 상황이 고정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가득이다. 다들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떻든 그때를 기억할 수 있어야 우리는 알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소연 / 그 좋았던 시간에 / 달 / 253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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