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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11시간전

김상민 《아무튼, 달리기》

삼십대의 내가 오십대의 내게 바통을 넘긴 것 같은...

*2020년 12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갑작스레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 올해 초의 일이다. 삼월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스포츠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택한 자구책이 불광천을 거쳐 한강을 향하여 달리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함께 탄천을 달린 적이 있었는데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아내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왜 그렇게 달리는 것이 싫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제 막 삼십대의 문턱을 넘은 그때의 우리는 금세 달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루는 99퍼센트의 루틴과 1퍼센트의 이벤트로 구성된다. 루틴은 지구의 공전처럼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일상이다. 출근길 지하철 풍경부터 맥도날드의 피클 뺀 더블치즈버거, 노동요로 틀어놓은 검정치마의 노래와 침대맡 스탠드 조명 아래 읽는 한 권의 책까지, 불가피한 현실과 좋아하는 취향들이 뒤섞여 빚어는 삶의 단면이다. 그렇게 루틴은 내일도, 그다음 날도 똑같은 얼굴을 한 채 반복된다. 반대로 이벤트는 일상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크고 작은 물결이다 소소하게 반짝였다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는가하면,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며 루틴의 풍경을 산산이 무너뜨리기도 한다.” (P.15)


  사이좋게 오십대가 된 아내와 나는 그때와 달리 달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아내와 나 사이에는 꽤 격차가 생겼다. 나는 두 번에 걸친 족저근막염 증세로 세 달 정도 달리지 못했다. 첫 번째 족저근막염은 억지로 십 킬로미터를 달린 다음 발생했다. 그때까지 나는 족저근막염이라는 병을 알지도 못했다. 다시 뛸 수 있을 때까지 두 달 정도가 걸렸다. 한 달이 넘은 다음부터는 조금씩 달릴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달리기는 힘들었다.


  “... 마이 페이스로 달린다는 건 편안하게 휘파람 부르며 뛰는 일이 아니다. 튀어 나가려는 본성의 고삐를 힘껏 쥐고 지금의 속도를 안간힘 쓰며 유지하는 기술이다...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려 애쓰는 게 달리기 세계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삶에도 사람마다의 페이스가 존재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를 수도 혹은 느릴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리는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맞는 최적의 페이스, 다시 말해 가장 나다운 삶의 속도와 방식을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일상의 속도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정해지기 일쑤다. 특히 대부분은 속한 집단에서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집단의 목표는 개인의 속도보다 늘 두세 발 앞서가기에 우리는 그 간극 속에서 매번 힘겨워한다...” (p.43)


  나의 족저근막염 증세가 호전되어 십 킬로미터를 편안히 달리게 되었을 무렵 아내의 무릎에 문제가 발생했다. 오른쪽 무릎의 근육에 문제가 생겨 강릉에 휴가를 갔을 때 수영을 하고 자전거는 탔지만 달리기는 하지 못했다. 아내는 가끔 그것을 아쉬워한다. 아내의 무릎이 나아 함께 달리게 된 어느 날 나는 기록을 앞당기려 무리를 하다 다시 족저근막염 증상을 느꼈다. 그 전에는 오른발이었는데, 이번에는 왼발이었다. 


  “달리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아무리 무거운 고민이라도 달리기 시작하면 점차 그 부피가 줄어든다. 몸이 바쁘게 돌아가니 평소처럼 복잡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다. 우선순위 정렬 버튼을 누른 것처럼 중요치 않은 것들은 자연스레 생각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마음 한가운데에는 고민의 본질만이 남는다...” (p.93)


  첫 번째 족저근막염처럼 심하지 않아 절뚝거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달릴 수는 없었다. 그사이 아내는 수요일과 금요일의 트레드밀 훈련 과정에 등록하여 빠지지 않고 잠실과 녹번 사이를 오갔다. 트레드밀 훈련이 없는 주말에도 달리기 까페에서 하는 공식 훈련에 참가했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였는데, 킬로미터당 6분 정도의 기록이었다. 아내가 하프를 완주했다는 말을 듣고, 나도 왼발의 족저근막염 이후 처음으로 십 킬로미터를 달렸다. 킬로미터당 6분 20초가 걸렸다. 한 주 후에 킬로미터당 6분으로 시간을 조금 줄였다. 


  “어떻게 나이 들길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그때마다 나의 답은 한결같다. 살아온 결과로서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겸손한 어른이길 바란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오롯이 나의 능력 덕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들이 내게 오기까지 거쳐온 시간과 과정, 누군가로부터 받은 도움을 잊지 않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그렇게 과정을 잊지 않고 기억해온 시간들이 나를 올바른 어른의 방향으로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p.153)


  그리고 이제 아내와 나는 사이좋게 고관절에 이상이 생겼다. 나는 오른 다리의 고관절 근처의 힘줄이 부은 것 같다고 하고, 아내는 양쪽 다리의 고관절이 좋지 않아 진행하던 고관절 단련 훈련을 멈춘 상태이다. 이상한 것은, 달릴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걸을 때 고관절에 약한 삐걱거림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도 아내와 나는 내일도 달릴 것 같다. 삼십대에 시작된 달리기의 바통을 뒤늦게 된통 이어받은 느낌이다.



김상민 / 아무튼, 달리기 / 위고 / 157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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