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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박산호《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거창하지 않지만 여지없이 거쳐야 하는 생활의 속내들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내가 자랄 때 부모와 세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다섯 식구 가정은 꽤나 일반적이었다. (나는 2남 1녀의 장남이고, 아내는 1남 2녀의 장녀이다.) 현재 여동생은 내외와 두 명의 자녀로 4인 가구를 이루고 있고, 남동생은 내외와 한 명의 자녀로 3인 가구를 (고양이 두 마리를 더하여) 이루고 있다. 나와 아내는 함께 살게 된 이후 계속해서 둘이 살고 있다. 우리와 함께 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고, 지금은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지낸다. 


  “... 솔닛의 엄마는 자기 딸의 금발 머리와 큰 키를 질투한다. 아들들은 사랑하고 숭배하지만 딸은 언제나 자신을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구박하고, 자신이 보는 못난 모습의 딸이 진짜 딸의 모습이라고 강요한다... 저멀리 사는 외국 작가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부자로 여유롭게 사는 딸을 질투하는 자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해준 친구도 있었다. 그렇다, 엄마도 딸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 자체를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그 감정에 따른 행동에 대해서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댈 순 있어도” (p.43)


  나와 아내가 2인 가구인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제 돌고 돌아 2인 가구로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 댁에 동물은 없다. 몇 년 전까지도 강아지를 키워보시라 권하기도 하고, 슬쩍 동네 고양이를 얹어드릴까 노리기도 했는데 결국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포기하길 잘했다. 요즘 매일매일 나를 찾으시는데, 동물을 키웠다면 그 호출이 더했을 것이다. 팔십 세가 되셨는데, 이제야 동물을 새로 키우는 일은 불가해 보인다.


  “언제나 기대는 배반당하고, 행운은 오래 계속되지 않고, 인생은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행운이 불운으로 바뀌는 일이 있다면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일도 있지 않을까.” (p.73, <우리들이 있었다>, 오바타 유키 만화, 주인공 아노 모토하루의 대사 중에서 인용)


  책은 엄마와 딸이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현재는 강아지도 한 마리 더) 함께 살아가는 2인 가구의 모양을 담아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인 모녀는 시의 적절하게 관계의 방식을 조정해가면서 지금에 도달해 있는데 그 과정을 조근조근 풀어내고 있다. 여러 모양의 2인 가구가 있을 터인데, 엄마와 딸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이렇기도 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거창하지 않지만 여지없이 거쳐야 하는 생활의 속내들이 곳곳에서 보여진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안녕하게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가족이란 끈으로 이어져 있지 않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상대가 잘 지냈으면 싶은 마음. 이렇게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넓은 우주에서 그래도 서로가 잘 되기를 바란다. 미워하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이것도 관계의 한 방식이니까.” (p.128)


  아내와 둘이 살기 시작할 때 한 말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자식을 갖지 않기로 했고 그러니 계속 둘이 살아야 할 테고, 그래서 크게 싸우고 돌아서면 곧바로 남이 되어버릴 수 있어, 그러니 어지간하면 싸우지 않는 게 좋아. 아내는 내 말에 동의했고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싸우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을 싸우는 것 같지는 않아서, 누가 물어보면 삼 년에 두 번 정도 싸운다고 이야기 한다. 


  “단단하게 서로 성장하는 진정한 관계를 원한다면 솔직하게 스스로를 드러내 상대가 그 모습마저도 좋아할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 한다. 여러 번의 실연을 통해 가끔 생기는 충돌마저 견뎌내지 못할 얄팍한 감정이라면 헤어지는 게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녁 공원 길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후, 릴리는 남친고 헤어졌다고 말했다. 좀처럼 자기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그에게 먼저 이별을 통보했다고. 대신 다시 친구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소년이 그건 곤란하다며 칼같이 거절했단다(소년이 좀 뒤끝 있네). 나는 잘했다고 릴리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p.214) 


  가끔은 그렇게 한 번씩 찾아오는 싸움도 싫어서, 우리 가족 구성원에 한 명 정도가 더 있으면 지금 보다 나았을까,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이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은 2인 가구에서 1인 가구로 줄어들 일만 남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났더니 앞으로는 더 싸우지 말아야지, 다짐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지난해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2인 가구 비율은 27.8%, 그리고 1인 가구 비율은 30.2%이다.



박산호 /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 지와인 / 233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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