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못했던 상상의 삶을 향해 조금씩 조금더...
「우리들」
“...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세계가 있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름은 지나갔다. 그해의 모든 태풍이 소멸했고, 모든 매미는 울음을 그쳤고, 아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그게 다였다.” (pp.39~41) 정영수의 소설은 평균 이상이다. 그것이 어떤 소재이든 나름의 독창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작가라는 느낌이다. 정은과 현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로 작정하고, 나를 고용한다. 나는 두 사람과 어울리고, 그들이 작성한 원고를 검토하는 일을 한다. 어느 순간 정은과 현수의 관계가 드러나고, 나는 관계가 끝난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나 어떤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헷갈리는 연경과 두 사람을 연결시켜 생각한다. 불명확하지만 문학의 어떤 본질에 접근해보고자 했을 것이라는 해석의 여지를 가질 수도 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작가의 문장은 유려하게 흐른다. 거기에 내 의식을 두둥실 맡길 만하다.
「내일의 연인들」
“우리는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남현동 언덕 위에 있던 조용하고 아늑한 빌라가 적어도 우리를 구조하긴 했다고 여겼던 것 같다. 삶의 지난함에서, 무기력함에서, 희망 없음에서. 학교나 회사에 있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허락된 ‘진정한’ 삶의 시간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곳은 우리에게 서로의 존재만큼이나 중요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pp.64~65) 이혼을 한 선애 누나가 맡긴 공간에서 뭔가 ‘진정한’ 것에 근접하였다고 여기는 나(와 지원)의 시간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마저도 지금은 없는 ‘그들의 유령들’의 시간과 외곽이 겹친 그림자 같은 것일까...
「더 인간적인 말」
얼마전 까페 여름의 형과 스위스에서의 죽음, 그러니까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종종 그것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형은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고 하면서 다만 그 죽음의 이유를 영어로 써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형이 근사하게 쓰고 그것을 돌려 쓰자고 제안했다. 죽음에 거창한 이유를 대는 일은, 그것도 내 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의 말로, 어쩐지 좀 추레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태어날 때는 내 의지가 아니었으나 죽을 때는 나의 의지로, 라는 묘지명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다. 소설은,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모와 그 선택에 딴지를 걸려고 하였으나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조카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 인간적인’ 죽음이 아니라 그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의 다원화라는 현대적인 현상이 있을 따름이겠지...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현대에서의 삶’이 가지는 위험천만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하며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현대인의 이면에 대한 칼날 같은 이야기이다. “... 그 일은 참혹하고 불운한 일이었지만 내게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내가 겪은 일이 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게 때때로 찾아오는 이 강렬한 죄책감, 그것이 찾아올 때마다 느껴지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통증은, 그 아이를 떠올리면 밀려오는 발작적인 비애는 대체 뭐란 말이지? 나는 감각과 무감각,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혼란스러웠다.” (p.117)
「기적의 시대」
소설집에 연애에 대한 글이 몇 개 있는데 모두 마음에 든다. 그것들은 소소하고 위태롭고 비현실적이지만 적당히 리얼하다, 아니 적당한 판타지를 지향하고 있다. 과거의 연인들에 대해 솔직한 부부, 그 중 남자 쪽의 연혁 중 빈 공간, 어쩌면 아직 그곳에 있을 연희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의 나라에서」
“헤어질 때쯤엔 네 명 모두 취해 있었고 조금 가까워진 우리는 서로에게 이유 없이 악담을 퍼부어대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는데 조아현은 내 번호를 저장할 때 이름을 쓰는 대신 아무 버튼이나 눌러서 ‘ㅑ’라고 입력해두었다. 번호를 저장하긴 하지만 절대 나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그녀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는 종종 ㅑ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p.156) 이렇게 시작된 나와 조아현의 관계는 팔레스타인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길을 잘 찾는 서울 사람들」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을 하지만 간혹 길을 잘못 찾아들곤 한다. 소설은 그렇게 길을 잘못 찾아들어 크게 늘어난 도착 시간을 두고 발생한 심리적인 상태를 짧게 그려내고 있다. 잘못 들은 길이 늘여놓은 시간을 향해 투덜거려보지 않은 현대인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세계」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 내가 이제야 그들의 인생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는 것을, 이제 그 두 사람의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비로소 그들이 직접 선택한 서로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지닌 채로 온전한 자유 속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결과가 자신을 또다시 전형적인 고난과 불행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해도, 스스로 상상해낼 수 없는 삶을 선택하지 못한 그녀를 누가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p.211) 이영선과 허남영이 만났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나를 잉태하였고 내가 태어났고 시간이 흘러 이제 이영선은 허남영과 헤어지길 바라지면서도 그렇지 못한다. ‘스스로 상상해낼 수 없는 삶을 선택하지 못한 그녀를 누가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문장에 눈이 시리다.
정영수 / 내일의 연인들 / 문학동네 / 233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