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외《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어둡고 좁고 돌이키기 어렵지만 돌이켜야만 하는 길들을 따라...

by 우주에부는바람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기오성과 채은경은 오래전 교수의 고택에서 문중의 공식 세보를 정리하면 보낸 한 때를 공유하였다. 그곳에는 교수의 손녀인 강선도 있었다. 다음에 기오성과 채은경은 팟캐스트의 진행자와 출연자로 만난 적이 있다. 거기에는 달이라고 들리지만 실은 달리였던 한 여자가 있었다. “꽃은 없었고 머무는 날 중 아주 추운 날에는 가지 끝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어느 밤, 그렇게 흰 가지를 보고 있는데 바람이 불었고 어딘가에서 누가 종이 같은 것을 태웠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소리들이 연상되었다. 기대와 상관없이 발생하고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저절로 소멸했다가 다시금 떠오르던 어떤 것들이...” (p.41) 그리고 이제 나는 홀연히 사라진 기오성을 떠올리는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승아가 찾아 간 그 나라 그 도시의 민영, 민영의 말을 들었다가 사라진 마이크의 자전거, 민영을 대신하여 승아가 찾아간 우체국이라는 사람과 물건과 공간들이 각자의 월요일이나 목요일 등에 포함되어 있다.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채운과 채운의 엄마 반희가 함께 떠나는 여행의 이야기이다. 반희와 살고 있지 않은 채운이 반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툭툭 끊어지면서도 이어진다. 나이 든 반희의 ‘배뇨의 속도’와 이들 모녀의 여행의 속도 혹은 대화의 속도는 어딘가 닮아 있다.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는 혹은 알게 되는 혹은 알 것 같은 그런 속도...


정한아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시원의 엄마는 두 번째 결혼한 윤과의 이혼을 앞두고 있고, 이사를 하는 중에 시원은 엄마가 결혼한 웨딩홀을 알아챈다. 시원의 엄마는 이제 자신의 아버지의 건물로 한 몸 뉘일 장소를 찾아 들어가 세입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시원은 이제 자신을 떠나 자신의 아버지인 최가 있는 호주로 떠나려 한다. 시원의 엄마는 과거를 회상하고 시원의 여행을 반대하다 받아들이고 세입자들인 노파와 아이들과 부딪치고 받아들인다.


최은미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창용, 유정, 뭐든 좋지 않은 날에 유정은 동생인 유태와 함께 오랜만에 연락이 된 창용이 오빠를 향해 길을 나선다. “유정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가족들이 그 글을 읽은 것인지, 읽었다면 누가 읽고 누가 못 읽은 것인지, 그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글로 써서 발표까지 해놓고 왜 자신은 가족들한테 정식으로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직접 말은 못하지만 이렇게 썼으니 알아서 알아채주길 바라는 것인지, 계속 모르길 바라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p.234) 친족 성폭력이라는 어두운 주제가,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는 주제가 어떻게든 촘촘하게 소설 안에 박혀 있으려고 한다.


기준영 「들소」

“... 운명에는 탄성이 있다. 어느 한때 우리는 마흔세 살쯤이고, 하루가 저무는 속도로 하루를 잃는 보통의 어른이다. 아이일 때보다 훨씬 많은 비밀을 품고 살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외투 서너 벌 속에 스스로를 단정히 채워넣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귀중하다는 표현과 나란히 붙여놓고 볼 수는 있으나 타인에게 쉽게 발설하지 않는 사람. 다만 우스워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진땀을 흘릴 만큼 힘을 들여야 하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연극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배역이 하나 더 있다고, 나는 그게 들소라고 느낀다. 지금 저만치서 그게 오고 있다고.” (p.292) 노부부의 집에 세 들게 된 모녀, 그중 어린 딸인 고푸름이 주인집 할머니 그리고 마음에 드는 소년 길우와 맺는 작고 사소한 관계 설정들이 포함되어 있는 성장 이야기이다.



김금희, 은희경, 권여선, 정한아, 최은미, 기준영 /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10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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