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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김봄《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그날밤 나는 엄마 옆에서야 겨우 잠들었다...

*2020년 11월 1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버지가 1박2일로 친구 분들과 설악산 여행을 떠나셨다. 올해 팔순을 맞이한 세 명의 친구가 나이가 조금 다른 두 명의 친구와 힘을 합하여 떠났는데, 엄마는 오랜만에 1박2일을 혼자 지내시게 되었다. 걱정이 되어 점심에 전화를 걸었는데 한 시간 너머 통화 중이었다. 뭔 전화를 그렇게 오래 하세요, 라고 묻자 가만 보자 내가 누구랑 전화를 했더라, 그렇지 네 여동생이랑 그리고 성북동 이모랑 대전의 권 집사랑 전화하느라 그랬나보네, 라고 하신다.


  “형제들이 책을 펼쳐놓고 눈치를 살피든 말든, 손 여사가 뱃속에서 올라온 목소리로 아버지 흉을 보든 말든,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방바닥을 뒹굴면서 공상을 했다. 오 남매 중에 오직 나만이 뭔가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뭔가를 하고 있는 척하는 형제들보다 당당할 수 있었다.” (p.40)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손뜨개를 하였다. 나와 두 동생은 어린 시절 내내 엄마가 떠준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 겨울을 났다. 맏이었던 나는 실타래를 양손에 걸고 엄마가 꼬인 부분을 탈탈 털어가면서 실을 뽑아 둥근 공 모양으로 만드는 동안 잠자코 기다리는 역할을 하곤 했다. 아직 어린 동생들에게는 무리인 어떤 일을 한다는 성취감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남동생이 결혼했을 때 엄마는 두 며느리에게 손뜨개질로 한복을 떠서 건넸다.


  나는 재수를 했는데 두 번째 대입 시험을 앞둔 날 밤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심리적인 부담이 그만큼 컸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두드려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지 금세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나셨다. 연년생의 여동생이 있고 또 이년 터울의 남동생이 있어 나는 엄마와 함께 둘이 잔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 밤 나는 엄마 옆에서야 겨우 잠들었다.


  “우리 셋은 언제나 한 이불에서 잔다. (손 여사와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잘 때 아담은 내 오른쪽, 바라는 왼쪽 머리맡에 자리를 잡는다. 내가 베개를 베고 누우면 아담은 앞발로 내 머리를 빗어주듯 그루밍을 해준다. 하루 동안 자기를 잘 섬겨서 칭찬하는 것인지, 여러 번 앞발을 움직여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 바라는 내 베개를 같이 베고 내 얼굴 근처 어딘가에 자기 앞발을 붙이고 잔다...” (pp.93~94)


  두 분이 대전으로 내려가고 서울의 아파트에서 우리 형제들이 사는 동안 엄마가 한 번씩 올라오곤 하셨다. 손수 만든 반찬을 만들어 오기도 하였고 올라와서 우리에게 물어 새로운 반찬을 만들기도 하였다. 한 번은 저녁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내게 책을 한 권 권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어렵게 어렵게 박완서의 《저문 날의 삽화》를 골라 드렸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그러니까 오십 대의 초입...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내게 연락하여 이천만원이란 돈을 요구하였다. 이제 결혼도 하고 했으니 그간 네게 들어간 돈의 일부를 갚는 것이 도리라는 말씀이었다. 네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천만원짜리 적금에 들었으니 매월 오십만원을 보내라고 하였다. 아버지의 전화에 곧이어 엄마가 전화를 하였다. 그 돈이 어디로 가겠냐 어차피 우리 죽으면 맏이인 너에게로 가는 돈 아니겠냐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괜찮다고, 아버지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했고, 삼년에 걸쳐 매월 돈을 부쳤다.


  “손 여사는 여전히 보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손 여사가 보수라고 해서 내가 엄마 취급을 안 할 것인가? 손 여사 역시도 내가 진보 딸이라고 해서 딸 취급을 안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p.170)


  엄마의 정치 성향은 지금까지 아버지와 나란했다. 그러다 최근 조심스럽게 자식들 편으로 조금 자리를 옮겼다. 뉴스를 볼 때마다 정부를 욕 하는 아버지에게 이제는 신물이 난다고 하였다. 아버지 앞에서는 그런 말 마셔요, 라고 하면 당연하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건 그렇고 한겨레에 실린 김민식의 칼럼으로 하루가 시끄러웠다. 책 읽는 엄마를 향한 책 안 읽는 아버지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글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엉망이었다. 이후의 사과문도 부실했는데, 너네들한테 사과할 마음 없다는 마음이 여실했다. 



김봄 /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 걷는사람 / 174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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