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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7. 2024

백수린 《눈부신 안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연애 사이의 접착력은...

  《눈부신 안부》는 파독 간호사라는 명칭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연애 소설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 파독 간호사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쳐 양국의 협조 하에 독일로 파견된 1만여 명의 간호 인력을 말한다. 비슷한 시기 (1963년부터 1980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파독 광부도 있었다. 일자리가 부족하였던 우리와 노동 인구의 부족을 겪었던 독일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 우재는 규모가 작은 동아리 내에서 몇 안 되는 동기였고, 이십대 초반 나를 들뜨게도 갈급하게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그 시절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벚꽃이 만개한 텅 빈 캠퍼스를,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이 부는 한강 둔치를 달아오른 얼굴로 함께 걷던 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 번의 우연과 엇갈림 끝에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각자 연애를 하는 동안엔 서로에게서 멀어졌다가 한쪽의 연애가 끝나면 다시 조금쯤 애달파지는 그런 사이로 차츰 변해갔다.” (p.8)


  소설의 화자인 나의 이모가 파독 간호사였고, 나는 열세 살 겨울에서 열다섯 살 겨울까지 잠시 독일에서 이모와 함께 살았다. 직전 나는 언니를 잃었다. 나의 부모는 첫째 딸을 잃은 것이고, 나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일을 하고 그리고 나의 엄마는 독일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마도 딸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취한 고육지책이었을 수 있다. 이야기는 바로 그 독일에서의 나의 생활을 발단으로 진행된다.


  “... 언니, 나는 시디를 듣고 또 듣다가 오랜만에 언니, 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발음했다. 일주일만 지나면 해가 바뀌고 나는 언니와 동갑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일 년 후부터 내가 언니의 언니가 될 것이었다. 언니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나 혼자 살게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물론 해나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나에게는 거짓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p.50)


  그곳에서의 생활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이모는 다른 파독 간호사의 자식들과 나를 연결시켜준다. 그렇게 마리아 이모의 딸인 레나, 선자 이모의 아들인 한수와 어울리기 시작하며 독일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큰 병으로 나약해진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기 시작한다. 그 여정의 발판이 되는 것은 선자 이모의 오래된 일기장과 거기에 등장하는 K.H라는 이니셜을 쓰는 인물이다. 


  “... 그 아래 이모는 다시 『생의 한가운데』의 그 구절을 적었다.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p.196)


  이러한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가 과거의 일이라면 그로부터 이십여 년 이상이 훌쩍 지난 현재에서 나는 우재와 다시금 연락을 취하고 만난다. 그리고 독일의 이모가 한국에 찾아와 나의 집에 머무는 동안 오래전 시작된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고 완성이 되고, 어쩌면 대학 시절 시작된 나와 우재의 만남도 더 이상은 늦춰질 수 없기에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된다. 두 갈래의 이야기 모두 해피 엔딩이다.


  “나도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엔 왕벚나무 편백나무 같은 것들이 길거리에 많았대. 그런데 70, 80년대에 제주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아름다운 남국의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야자수들을 정책적으로 수입해 심었다더라. 그래서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야자수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대.” (pp.307~308)


  그 당시 머나먼 이국의 땅을 향하여 출발하며 많은 것을 감수해야만 했던 파독 간호사의 이야기는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이 이미 오래된 그리고 지나간 이야기이고 현재와의 접점으로 삼기에 나와 우재의 연애는 접착력이 세지는 않아 보인다. 여하튼 파독 간호사와 파독 광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는(영화 <국제시장>도 있겠다) 적지 않았지만 이를 다룬 소설은 그에 반해 드물었다.



백수린 / 눈부신 안부 / 문학동네 / 315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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