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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7. 2024

손보미 《사랑의 꿈》

줄표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소소하고 파란만장한 성장담...


  「밤이 지나면」

  “나는 아주머니들의 말을 엿들으며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이혼을 했고 자식이 죽었는데, 그녀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대체 어떻게?―이었다. 그리고 동네 남자들을 ‘꼬시려 든다’는 것. 외숙모는 욕설을 내뱉은 후에는 내게 그 말을 들었냐고 되묻곤 했지만, 그런 말―꼬신다든가 바람을 피운다든가―을 할 때에는 별로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내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거라고―잘못―판단했기 때문이었다...” (p.27) 줄표의 안과 밖을 오가며, 주고 받는 티티카카가 만들어내는 소소한 긴장감이 재미있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특징이다. 여하튼 엄마와 열다섯 살의 나이차가 나는 외삼촌 댁에서 외숙모의 보살핌(?)에서 살게 된, 한동안 말을 잃은, 내가 겪는 납치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저 문장 속의 ‘그녀’이다. 나와 외숙모, 나와 영예은 사이의 긴장감은 그녀와 동네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과 비슷한 결이었을까. 어쩌면 납치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의 도망은 그러한 동병상련에서 나온 것 아니었을까.


  「불장난」

  “...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반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내 얼굴과 선생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누구도 가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그 세계는 터무니없으면서 치명적이고 느긋하면서도 통렬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내 마음속에 꼭꼭 새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생각은 시간이 흐른 후에 착각, 기만, 허상에 불과하다는 판명이 날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그런 기만과 착각,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의 진짜 용도가 될 것이다.” (pp.130~131) 아주 잠시 그녀의 존재가 불분명하여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나의 아버지와 불륜의 관계였다가 나중에는 어머니가 되었고 급기야 장모의 역할을 해야 했음은 잠시 후에 밝혀진다. 그러한 관계의 전이가 이뤄지는 동안 나는 어린 학생이었고, 불량한 학생들을 둘러싼 소문에 호기심을 가졌으며, 어느 한 순간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나 곧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나는 불장난을 시작하게 되었다. 불장난이라는 단어가 중의적으로 가리키는 바가 소설 속에 다양하다.


  「사랑의 꿈」

  “어떤 사실은 그저 있는 그대로 쓰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된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써서는 안 돼요. 그러니까 그건 언제까지나 당신 마음속에만 있어야 해요.” (pp.150~151) 지방의 유복한 집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딸을 낳았고 이혼을 하고 그 남자가 죽었다. 그녀는 방학이면 그 남자의 엄마가 있는 집에 달을 보내고, 그 엄마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 그녀는 아주 작은 선택들, 아주 사소한 충동의 결과들이 누군가를 들끓게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그런 결정들이 삶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p.185)


  「해변의 피크닉」

  ”... 그날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어떤 여자를 ‘예쁘다’고 표현하기까지 아주 복잡한 과정들이 수반된다는 점이었다. 그건 단순히 얼굴의 어떤 한 부분―눈이나 코, 입―이 보기 좋다거나, 배열이 잘되었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예쁘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어떤 요소들을 매 순간 초월하는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pp.167~168) 스토리라는 소설의 외곽보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장의 윤곽에 더 눈이 갔다.


  「첫사랑」

  “여기서 이야기를 끝마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면서도, 더 나아가다가는 자칫 이 이야기 속의 어떤 부분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족을 붙이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에서 나는 이미 졌다.” (p.312) 원래대로라면 이런 사족은 소설의 완성도를 크게 해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주인공에게 파도처럼 덮친 두 개의 ‘첫사랑’(이라고 불러도 될지...)의 귀여움이 이 사족마저 귀엽도록 만들고 만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겪었을 심각한 귀여움의 시기라고나 할까.


  「이사」

  “... 그러나 그 순간―그녀가 나 때문에 눈물이 난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그녀만큼 나를 사랑한 적은 없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으리라고. 그러므로 그녀가 허언증 환자에 거짓말쟁이라고 할지언정, 아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녀의 매 순간순간은 완벽한 진실에 가까울 수 있었으리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어린아이나 할 법한, 이치에 맞지 않는 망상에 불과했지만, 그날 그 병실에서만큼은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유일무이한 세계같이 느껴졌다.” (p.359) 초등학생인 나를 중학생인 그녀가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를 적당히 속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나의 이사와 함께 이러한 관계는 끝이 난다. 이후 그녀는 나의 어머니에 의해 거짓말쟁이로 치부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그녀의 병실에서 재회한다. 



손보미 / 사랑의 꿈 / 문학동네 / 394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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