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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8. 2024

오한기 《인간만세》

문학이 힘을 잃은 시대의 문학을 지탱하는 위악이랄까... 

  그간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작성한 리뷰를 몇 개 읽었다. 《인간만세》에서 나와 대결을 펼치는 작가의 이름이 ’진진‘인데 ’진진‘은 작가의 단편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장편 《산책하기 좋은 날》을 읽고는 이것을 ’자전적 소설‘로 보아야 하나 의구심을 가졌는데, 《인간만세》에서처럼 오한기는 답십리 도서관 상주 작가였던 적이 있다.


  ”... 우선 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밝히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름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임기를 마치기 전 상주 작가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를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가 에세이는 자신 없다고 하니까 소설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가 쓴 글은 기본적으로 빈정거림, 비아냥거림, 과장, 비논리가 뒤섞여 있어서 국가정책 홍보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지만 문화예술위원회는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홍보라는 것을 티 내지 않는 게 문학다워서 좋다고 했다. 문학답다니.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세금 받아먹기는 이렇게 고된 것이다.“ (pp.16~17)


  오한기도 그렇고 정지돈도 그렇고 소설을 보노라면 내 어느 시절의 위악이 떠오른다. 나는 종종 어느 시절 이후부터는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를 생활의 모토로 삼게 되었다고 실토하고 다닌다. 그렇지만 내가 싫어하는 위악은 악과 구별되지 못하는 악이다. 그러니까 악한 것을 위악으로 은근슬쩍 퉁 치고 넘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오한기나 정지돈의 위악은 그야말로 위악 자체이니 크게 해가 될 것이 없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건 단연 귀염둥이 똥똥이다. 줄여서 EE라고 부른다. 한글 창에 똥똥이라고 쓰기 성가셔서 ’ㄸㄸ’이라는 약칭을 쓰려고 했더니 EE로 자동 변환됐다. 그래서 그냥 EE.” (pp.43~44)


  그러니까 똥과 관련한 여러 괴물들이 도서관에서 산다는 설정은, 문학은 똥이다는 위악으로 읽혀서 떨떠름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우리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변기와 사마귀가 결합한 변충기’나 ‘인간의 뼈대에 똥이 들러붙은 형태인 블록버스터 똥수아비’,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죽은 아기의 원혼인 똥마이베이비’와 같은 괴물을 도서관 상주 작가가 도서관에서 상상한다고 하여 우리 사회에서 무슨 실질적인 위해가 되겠는가. 


  “나는 서가에 선 채로 진진의 작품을 훑어봤다. 미래 사회, 사이보그가 돌연사한 인간의 영혼과 함께 지구 다섯 바퀴를 돈다는 내용이었다. 프로필을 봤다. 지렁이처럼 누르면 꿈틀댈 듯 길쭉한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흐릿한 이목구비와 대비돼 더욱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다. 나이는 나와 엇비슷했고, 서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치기 좋은 경력이군. 나는 이렇게 생각한 뒤 『미래 돌연사』를 서가에 꽂아두었다.” (pp.66~67)


  나이브하기 그지 없는 상주 작가 나와 상주 작가 경쟁에서 패한 진진 사이의 흥미진진한 대결 또한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전개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 뜨고 못 볼 정도는 아니다. 진진이 도서관에 있는 초판본을 빌린 다음 그 책은 팔아 자신의 용돈으로 삼고 대신 같은 제목의 책을 써서 반납하는 정도가 가장 큰 범죄에 해당하는데, 이 또한 이 땅의 버젓한 거악들에 비한다면...


  “은행은 돈을 보관해주고 그 돈을 투자하고 불려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는 이자를 받습니다. 은행은 그 자체로 강도나 다름없고, 저는 강도를 터는 강도가 될 것이니, 즉 강도가 아닙니다. 이 도서관도 마찬가지죠. 세금으로 책을 사고 온갖 생색을 내며 책을 빌려주잖아요. 대체 독촉은 왜 하는 겁니까? 나는 진진의 논리적 비약에서 한물간 아나키스트를 떠올렸지만 티 내지 않았다. 남들이 봤을 때 나 역시 그럴 테니.” (pp.125~126)


  《인간만세》는 도서관 상주 작가라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러니까 리얼리즘으로 충만한, 그러면서도 똥 괴물이라는 초현실주의적 위악이 판을 치는 소설이다. 김수영은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고 하였던가. 문학이 힘을 잃은 시대의 문학이 어떤 형식과 어떤 내용으로 문학을 지탱할 수밖에 없는지,를 위악적으로 보여준다.



오한기 / 인간만세 / 작가정신 / 206쪽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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