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와일드 시드》

우생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선한 능력의 유전학...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 《와일드 시드》는 두 번, 시간의 점프를 감행한다. 1690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소설은 1741년으로 건너뛰고 다시 1840년으로 이어진다. 아프리카를 떠난 다음에는 모두 북아메리카의 일정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소설의 제목인 ‘와일드 시드’는 야생의 종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인공인 아냥우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냥우는 또다른 주인공인 도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혈족의 일원이 아닌 야생에서 발생한 일족이다.


“도로는 허약하고 발육 상태가 좋지 못했다. 어머니가 낳은 열두 명 중 막내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그의 형제자매는 강해 보였지만 전부 죽었다. 반면 그는 비쩍 마르고 덩치도 작은 어딘가 이상한 아이였고, 부모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가 살아남은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라고는 부모뿐이었다. 두 사람 모두 열한 명의 아이를 잃고 나서 태어난 아들을 극진히 아꼈다. 다른 사람들은 최대한 그를 피했다. 그의 일족은 크고 건장했으며 먼 훗날 누비아인이라고 불린 사람들이었다... 변이의 고통이 몸을 휩쓸었을 때 그는 고작 열세 살이었다... 그는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육체는 죽었지만 존재는 최초의 전이를 한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육체로, 바로 자신이 무릎을 베고 있던 어머니의 육체로... 무엇을 어떻게 한지도 모른 채 다시 한 번 몸을 옮겨 탔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육체로.” (pp.347~348)


도로는 자신이 뿌린 씨앗의 상태를 보기 위하여 아프리카에 들렀다 아냥우를 발견한다. 자신의 일족은 이미 사냥을 당한 다음이다. 1690년은 그런 시기이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사로잡혀 노예로 팔려나간다. 그러지 않으면 순식간에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도르는 아주 멀리서도 아냥우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고, 그녀가 이미 삼백 년 이상을 살아남은, 그러니까 삼천 년 이상을 산 자신과 유사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챈다.


“우울해진 아냥우는 도망칠 수도,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남자와 결혼하는 일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봤다. 그러면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 남편들은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몰랐다. 그녀는 도로가 자신을 귀중히 여기고 신경 써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약간이나마 영향력을 미치고, 자신이 원할 때 어느 정도 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없이 결혼을 반복해온 그녀는 결국 그럴 필요가 생기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p.68)


그리고 도르는 아냥우를 협박하여 자신의 미국행에 동행하도록 조치한다. 아냥우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로를 따른다. 아냥우는 도로의 힘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자신이 그를 따라나서지 않으면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족을 모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냥우는 자기 진짜 모습이 몸으로 흘러들어오게 해서 스무 살의 육체를 가진 젊은 여자가 되었다. 스무 살 때 그녀는 격렬하고 끔찍한 병을 앓았고,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으며, 몸의 이곳저곳에서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발작과 몸부림을 멈췄고 몸의 감각도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육체를 제어하는 일이, 자기 몸 내부를 들여다보며 조작하거나 바꾸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pp.109~110)


애초에 도로의 아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냥우는 미국으로 오는 배에서 친해진 아이작과 결혼을 하게 된다. 아냥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 그러니까 도로의 아들인 아이작과의 결혼에 반기를 들지만 결국엔 받아들인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도로에게 남아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아이작에게 설득당한 결과이다. 그리고 아이작이 죽기까지 아냥우는 그와 함께 한다. 아이작이 죽은 이후 아냥우는 도로를 떠난다. 자신만의 일족을 일궈 살아가지만 결국은 도로가 그곳을 찾아낸다. 도로는 아냥우를 죽이기로 작정하지만 차일피일 미룬다. 도리어 아냥우는 스스로 죽기로 작정하는데 이번에는 도로가 이를 만류한다.


“그날 밤 모두가 배불리 먹었는데, 특히 아냥우는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물고기의 신체 구조에 대해 필요한 모든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고기로 변신해 물고기처럼 살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날고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알 수 있다. 한 입씩 먹을 때마다 그 생물은 입에 넣은 살점의 수천 배에 달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160)


소설에는 다른 사람의 육체를 취하며 영생을 하는 도로,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생물체로든 변화가 가능한 아냥우, 이외에도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로의 일족이 등장한다. 이들은 일정한 변이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능력에 눈을 뜨게 된다. 마치 엑스맨의 선한 측과 그렇지 못한 측을 보는 것 같다.



옥타비아 버틀러 Octavia E. Butler / 와일드 시드 (Wild Seed) / 비채 / 550쪽 / 2019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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