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을 위험이 아예 없거나 길을 잃어도 아무 해가 없는 소설...
*2020년 11월 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달 말에서 이번 달 초까지는 내게 누락된 시간이다. 나는 삶의 첨예한 문제로 시들시들하였다. 나는 미스터리에 가까운, 해결되지 않음으로 유지되는 젊음의 시간들을 보냈지만 이제 그 시간들은 끝이 났다. 이제 내가 겪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난감해지는 문제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누락된 시간들 대부분은 가슴을 짓누르는 불안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명해야 하는 순간들로 채워졌다.
“긴 방 창문에서 마르타의 집이 보인다. 삼 년째 나는 마르타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녀는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 다르게 말했다. 심지어 자기 생일조차 매번 다르게 얘기하곤 했다. 나와 R에게 마르타는 여름에만 존재했고, 겨울에는 이 주변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그녀는 작고, 머리는 거의 하얗게 세었으며, 이도 좀 빠져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주름졌고 건조하며 따뜻하다.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우리가 때때로 키스나 심지어 어색한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p.14)
나는 불안으로 촘촘한 시간들에 길을 내기 위하여, 책을 읽는 일만은 포기하지 못했다. 오래전 나는 길을 보여주고 따라오라는 소설을 읽었고, 그 다음에는 길을 보여주긴 하지만 내가 따라가야 하는 소설을 읽었다. 그러다가 나는 점차 길을 보여주지 않아서 내가 길을 내야 하는 소설로 옮겨갔고 급기야 길을 잃을 위험이 아예 없는 소설 혹은 길을 잃어도 아무 해가 없는 소설에 이르렀다.
“졸린 상태에서 그녀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고,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실히 안다고 생각했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그러나 비몽사몽간에; 생긴 일이었는지, 아침에 그 모든 것들은 사라져 버렸고, 그녀에게는 자신이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막연한 인상만 남았을 뿐이었다.” (p.71)
그러니까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은 내가 다다른, 길을 잃어도 아무 해가 없는 소설들 중 하나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 《방랑자들》도 거기에 속하고,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지는 소설)들도 그렇다. 나는 이들 소설들을 읽을 때 독자로서 자유롭다. 얽매이지 않고 부러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아주 평온한 상태에서 목적지를 잃고 헤매기 일쑤다.
“행성의 영향에 대항하기 위해 쓰고 다니는 나무 모자가 프란츠 프로스트의 특징이었다면, 별명이 없다는 것과 컬이 가득한 머리 모양이 그의 아내의 특징이었다. 그녀는 집 앞 계단의 회반죽 잔류물을 쓸어 내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선 새 집은 햇빛에 침묵하고 있었다. 집은 어렸고, 아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집 뒤쪽 연못가에 그녀의 남편과 어린 아들이 함께 있었다. 어딘가 서쪽 먼 곳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p.203)
목적지가 없으니 헤맨다는 설정조차 무의미하다. 그 무의미함이 좋아서 독서에 기한을 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그 순간까지 읽은 것들을 정정하거나 보정하지 않는다. 그저 때때로 나를 붙잡는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다. 한 번 읽고 잠시 눈을 감고 아무 것이나 떠올린다. 거기에 나를 두기도 하고 거기에서 나를 없애기도 한다. 내가 있는 문장을 한 번, 내가 없는 문장을 다시 한 번 읽는다.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도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p.321)
나의 누락된 시간은 실체가 있는 나의 삶이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 발생하였다. 하지만 내가 동시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도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에서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낮의 집’에서 누락된 시간은 ‘밤의 집’에서 보충되고 있었다. 어쨌든 문제는 끝이 나거나 해결되었고, 나의 리뷰는 언제나 두 개의 집에 동시에 기거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올가 토카르추크 Olga Tokarczuk / 이옥진 역 / 낮의 집, 밤의 집 (Dom Dzienny, Dom Nocny) / 민음사 / 474쪽 / 2020 (1998,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