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복자에게》

제주의료원 산재사건이라는 현재와 유년의 사이에서...

by 우주에부는바람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인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고 리뷰를 작성하면서 한국화된 일본의 사소설 경향이라는 모호한 문구를 사용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다량의 일본 소설을 읽으며 (최근에는 읽지 않았으니 일본 소설의 최근의 경향은 잘 모르겠지만) 저절로 알게 된 어떤 제스처가 작가의 소설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발견된다, 라는 느낌을 그렇게 적었던 것 같다.


『영웅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웃으면 정말 멍청한 사자같은 게 될까봐”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에 나는 슬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묵직한 추가 달린 듯 몸이 어딘가로 기우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으로? 여태껏 가늠하지 못한, 그럴 필요가 없었던 세상 편으로, 이를 테면 영웅이 사자가 되고 싶다며 더는 헤헤거릴 수 없는 세상...』 (P.15)


그게 어떤 부분 때문이었을까 싶었는데 위의 문단에서 ‘그 순간에 나는 슬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문장을 보고는 불현듯 바로 여기, 라고 되뇌었다. 그러니까 등장인물의 감정에 대하여, 그 감정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밝힘으로써 오히려 그 감정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뜨리려는 시도 같은 것이 일본의 사소설과 닮았다고 느낀 것 아닐까.


“복자네는 꾸준히 개를 키웠고 복자는 으레 눈썹을 그려주었다. 대체 왜 개에게 그렇게 하는 거야? 물으면 우리 제순이는 특별하니까, 라고 대답했다. 복자는 그런 제순이의 눈썹이 일종의 농담 같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pp.80~81)


소설은 유년의 한 시절에 스치듯 만났던 ‘복자’라는 인물과 그 인물을 두어 시절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나서 겪게 되는 나의 이야기이다. ‘복자’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 공간은 고고리섬이라는 제주도에서도 한발 떨어진 섬인데, 그곳에는 나의 고모가 보건소의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복자’는 그곳 섬에서 나와 한 학년이 되는 아이로,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와 준 아이이기도 했다.


“... 나는 그렇게 드러나는 복자의 감정들에 대해 되도록 관찰자 역할만 하려 했지만, 그럴 때면 우리의 어떤 공기와 분위기에 균열이 나는 것을 함께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유년이라는 시간이 상처로 파이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뭔가 세상이 총체적으로 한심해지는 가운데 그래도 거기 빨려들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유약한 저항감이 드는.” (p.84)


하지만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그 섬을 떠났고 곧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판사가 되었고, 제주도이 한 지방법원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고고리섬의 동창인 고오세를 만나고 그를 통해 복자와도 다시 연결된다. 복자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근무하며 유산을 겪게 되었고, 관련한 사건으로 소를 진행 중인데, 그것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원에서 맡게 된다.


“... 언젠가 나뭇가지에 걸린 방패연을 한참 동안 올려다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다 찢기고 나서도 여전히 바람이 불면 그것을 타고 하늘하늘거리면서 오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장면이 생각났다. 중학교 어느 하굣길에서 나는 그것이 누군가를 아프게 떠올리면서도 좋은 기억들도 잊히진 않아 어쩔 수 없이 슬픔과 기쁨 사이에 걸려 있는 내 마음 같다고 일기장에 적었다...” (pp.320~321)


사실 소설의 무게추는 나와 복자가 보낸 유년의 시기가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제주의료원 산재사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제주의료원 산재사건은 2009년과 2010년 사이에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한 간호사들 중 여러 명이 유산하거나 선천성심장질환아를 출산하여 이를 토대로 산재를 신청한 사건으로 올해 초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 손상 모두를 산재 로 인정하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이 현재의 사건을 도드라지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좋은 의도로 선택된 실재하는 사건이라는 재료가 충분히 무르익은 형태의 음식으로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김금희 / 복자에게 / 문학동네 / 243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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