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성적인 밤》

선택은 번복되고 우리는 변덕스럽지만...

by 우주에부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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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밤》은 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책이다. 제목처럼 성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로틱한 그림에서부터 포르노라고 볼 수 있는 (정면에서 성기가 보인다거나 삽입이 된 형태의) 그림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책의 초반부에 이런 그림이 집중적으로 포진하고 있고, 마침 그 부분을 읽을 때 아내가 바로 옆에 있어 조금 곤혹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그림들 사이사이의 텍스트들을 읽었다면 다른 의미에서 아내가 곤혹스러웠을 게다.


“... 우리 각자는 다른 성기를 소유함으로써만 유발되는 성적 체위, 육체적 생활, 심리적 태도 등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조건은 영구한데, 각 성 옆에 나체가 있는 이유이다. 동물은 나체 없이도 있다. 고양이는 벗은 게 아니다. 붉은 물고기는 벗은 게 아니다. 오리는 벗은 게 아니다. 인간의 고유한 성욕에는 나체, 타자(alter)에 대한 심적 불안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심적 불안은 저 기원 이래 한 번도 진정되지 않았다. 조각술에서의 불가능한 옷 벗기기, 내가 여기 모아놓은 데생과 장면들의 불가능한 설득, 소설들이 연결하려고 찾는 불가능한 얼개, 구슬픈 음악이 종국에 말하게 될 불가능한 ‘환멸의 매혹’. 이것이 매혹하는 자의 불가능한 ‘매혹 없는매혹’이다. 나체란, 타자 속에 숨겨진 타자성이 폭로되고 계시되는 것으로, 이것이 불가능한 계시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아포칼립소다.” (p.51)


제목은 ‘성적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형용사 뒤에는 ‘밤’이 등장한다. 《성적인 밤》은 검정 종이를 바탕으로 그림이 배치되어 있고, 텍스트는 하얀 색이다. ‘성적인’ 그림들이 있고 마치 ‘밤’을 비추는 것 같은 명료한 텍스트가 있다. 텍스트는 그림을 설명하느라 그림을 따라가기도 하고, 그림을 설명하는 일에 그치지 않으려고 그림을 앞서 가기도 한다. 독자인 우리를 이끄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우리 시선이 세계에서 본 것이 반드시 세계 안에 있지는 않다. 우리 이야기는 체험된 것을 전하지만, 일어난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일어난 것은 이야기 체계를 띠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미지 시퀸스들이 시선 내부에 실제로 나타난다. 그 의도나 의미 또는 구조와는 별개로 장면을 만들어낸 건 감정이고, 감정을 ‘부여’하는 건 또 이 장면을 서술하는 행위이다.” (p.147)


나는 되도록이면 밤에 《성적인 밤》을 읽었다. 허벅지에 올려 놓고 볼 때도 있었고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볼 때도 있었다. 허벅지가 비어 있을 때 고양이 들녘이 냉큼 그 자리를 차지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 위로 고양이 들풀이 길게 몸을 드리울 띠도 있었다. 고양이의 몸통을 밀쳐내고 한 페이지를 읽고, 고양이 꼬리를 한쪽으로 치우고 다른 페이지의 그림을 살펴봤다.


“밤보다 더한 것, 거울보다 더한 것, 안개는 나의 어린 시절의 경이(驚異)다. 안개는 침묵 속에서 다 잡아먹는 거대한 포식자다. 다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된다. 다들 어디로 걸어가는 거지? 다들 어디서 사는 거지? 다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다만 강물 소리를 들었다. 나를 집어삼킬까봐 무서워 쥐처럼 벽을 따라 붙어 갔다. 안개는 밤처럼 사람들 앞으로 나온다―하지만 밤보다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더 구분이 안 된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밤에도 조금은 보이니 말이다. 안개가 죽음처럼 인간을 휘어감는다―살아남은 자들의 꿈이 없다면, 사람들은 거의 완전히 보이지 않을 것이다...‘ (pp.216~218)


여하튼 밤은 내게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꽤나 익숙한 공간이어서 우리는 잘 어울린다. 서로를 할퀴지 않고 건너다닌다. 그때 우리는 밤을 관통하지 않고도 죽음을 짐작할 수 있고, 관광하지 않으면서 밤을 돌아다닐 수 있다. 밤은 비좁고 그래서 성적인데, 그럴 때 밤은 검은 색의 환장이다. 그렇게 《성적인 밤》의 배경이 되는 검은 색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여백이 아니라 몰입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태아나 유아보다 훨씬 나이 많은 생명 존재들은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금기와 공포가 두 팔이라도 되는지 그들의 영혼을 꽉 쥔다.

토하려고 손가락을 집어넣듯, 그들은 목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옷 단추를 여미고, 문의 빗장을 지르고, 하루의 시간을 막는다.” (p.272)


밤이 길어 오래지 않아 《성적인 밤》을 모두 읽었다. 몰입의 시간은 시간의 형식과 내용에 변화를 준다. 몰입의 시간은 꽤나 상대적인 시간이다. 아마 ’성적인 것‘도 그럴 것이다. ’성적인 것‘은 황홀과 쾌락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죽음과 밤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내가 살아낸 그간의 과거가 선택을 도울 것이고, 그 선택은 언제든 번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적인 밤‘에 비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변덕스럽다.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 류재화 역 / 성적인 밤 (La Nuit Sexuelle) / 난다 / 284쪽 / 20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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