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이 아니라 '인간'에 집중하는 아름답고 박력있는 문장의 맛...
*2020년 8월 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주 아내와 함께 경포로 휴가를 다녀왔다. 두 권의 책을 들고 갔는데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과 헨미 요의 《먹는 인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먹는 인간이었다. 선배 내외와 함께 강릉 시내의 생선구이 집에서 먹은 자작자작한 된장과 양념장의 맛이 혀에 오래 오래 남았다. 그 전날 물갈이 탓인지 포식 탓인지 밤새 배앓이에 시달리고 난 다음 날인데도 그 정도였다.
“나는 내 혀와 위가 못마땅해졌다. 오랫동안 포식에 익숙해져 버릇이 없어진 데다 무엇을 먹었는지 곧 잊어버리기 일쑤며 매사에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내 혀와 위. 이 녀석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극한의 상황에서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기묘한 여행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p.22)
‘먹는 인간’이느라 바빠 ‘읽는 인간’에 소홀했다. 물론 최대한 자주 호텔 수영장에 들락거렸고 두 차례 동해안 자전거 길을 달렸다. 경포에서 주문진을 향하는 위쪽 길은 좋았고, 경포에서 정동진을 향하는 아래쪽 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내와 나의 여행은 이제 일종의 체력 단련을 겸하기 일쑤이다. 경포 해변에 사는 선배 내외와 함께 시루봉에 올랐고, 내려와 경포호를 반 바퀴 걸었고, 종이로 만든 것 같은 연꽃을 보았다.
“통일은 되었지만 표면적으로 제도가 바뀌었을 뿐 내용은 아직 미숙하다, 200명 정도 되는 교도관 중 해고된 사람은 몇 명뿐이다. 그들의 의식은 대체로 동독 시절과 같다. 수감자와 교도관이 여전히 서로 증오하고 있다.
담장 밖에서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바뀌었다. 담장 안에서는 바깥 변화의 실태를 모르는 수감자와 교도관 대부분이 서로 구악(舊惡)을 헐뜯는 것이다.” (p.108)
사실 헨미 요의 《먹는 인간》은 한가한 우리의 여행과는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다. 제목은 ‘먹는 인간’이지만 ‘먹는’이 아니라 ‘인간’에 집중한다. 그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치열한 지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저자는 얼마 전 통일이 된 나라의 행복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이제 막 통일이 된 나라의 아직 기워지지 않은 분열의 장소에서 먹을거리를 찾는 식이다. 미식으로 점철된 식도락 여행기를 짐작해서는 안 된다.
“인도양의 밀물과 썰물 때문인지, 이 부근에는 우윳빛 커튼처럼 아지랑이가 자주 낀다. 바람이 불면 커튼이 슬슬 걷히면서 땅바닥을 꿈틀꿈틀 기는 송충이처럼 너무나 허술한 피난민 막사와 갈색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p.37)
저자의 문장 또한 이러한 글쓰기에 어울리는 서글픈 아름다움과 그에 버금가는 박력을 지니고 있다. 어렴풋이 일본의 여행 작가인 후지와라 신야의 문장을 떠올렸다. 그러한 문장으로 작가는 세상의 구석구석을 – 방글라데시, 필리핀, 타이, 베트남,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대한민국 – 떠돈다.
“이상하게 보여도 이상한 음식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가는 곳마다 먹는 인간이 있꼬, 지금 그 음식을 먹는 데는 넘치도록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먹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둘러싸고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가 펼쳐진다. 오로지 그 인간극의 핵심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나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유별나게 먹고 마시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그 주인에게서 기억을 나눠 받아먹었다.” (p.346)
그리고 디카의 음식 찌꺼기, 피타빵, 고양이 통조림, 솜탐, 카사바, 듀공의 이빨 가루, 참새, 쌀국수, 바인자이, 독일 감옥의 식사, 되네르 케밥, 사츠카부르마, 보그라치, 옛 유고 난민용 구호 식품, 아드리아 해의 정어리, 코소보의 수도원 음식, 성수, 유엔 소말리아 활동단 각 국 부대의 후대식, 낙타 고기와 젖, 인제라, 소금 커피, 버터 커피, 우간다 에이즈 마을의 마토케, 러시아 해군 급식, 체르노빌의 방사능 오염 식품, 로푸흐, 이투루프 섬 유치장의 카샤, 우하 수프 등을 먹는다.
헨미 요 / 박성민 역 / 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もの食う人びと) / 메멘토 / 362쪽 / 2017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