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제되지 않은 자기복제의 결과물들로 푸르른,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김봉곤은 “나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잘 안다. 나 역시 내 글과 삶에 피로감을 느끼고 쉽게 질려버리곤 하니까, 타인이 비웃고 부정하듯 나 역시 그렇게 나를 절하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숱한 비하와 혐오와 부정과 번복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다름 아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내 삶과 글의 시작이 나 자신을 긍정하는 데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혐오를 이기는 것도, 이겨내게 하는 것도 내겐 사랑 외엔 없다.” (p.359)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알기는 알겠는데, ‘사랑’만 우두커니 남고 ‘삶’은 어딘가로, 그러니까 작가가 글을 통해 바라보지 못하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린 것만 같아서...
「시절과 기분」
“... 풍경을 보면 치열했고 해준을 보면 나른해지는 그런 주말 오후였다.” (p.9)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에 오래 전의 혜인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나는 나의 이름으로 나의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글을 써서 작가가 되었고, 나의 책을 발견한 혜인으로부터 문자가 오고, 나는 헤인을 만나기 위해 나의 과거로 향하고, 헤인을 만나서 과거의 우리를 떠올리고 돌아온다. 소설의 제목이 근사하다.
「데이 포나이트」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 수상작이다. 데이 포 나이트, 는 낮에 찍은 영상을 밤에 찍은 영상처럼 보이게 만드는 촬영 기법을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조작일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촬영하는 순간, 이후 이 장면이 낮이 아닌 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선배는 게이를 포비아하는 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어쩌면 그 선배 혹은 그 선배를 향한 나의 열정을 데이 포 나이트, 와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여름 사람에게」
“매마나 새도 너무 높이까지 올라가면 무서워할까? 난데없는 생각이 섞이는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저기 다시 있는 구름처럼 다시 있자고, 여름 아에서, 나 없이 당신에게 내가 모르는 일이 생기는 게 싫다고,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교문 밖을 나섰다. 태풍도 장마도 다 지나간 진짜 여름, 끓어 날아가고 부풀어오를 당신과 나, 그것이 오해나 착각으로 가득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어쩌면 내가 먼저 말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무엇보다 당신을 실-감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pp.129~130) 옛 사람과 지금의 사람이 겹치는 지점, 사랑에는 묘하게 그런 지점들이 있고, 작가는 예민하게 그 지점을 파고든다.
「엔드 게임」
“그와 나는 키, 몸무게, 체형, 심지어 발 사이즈까지 거의 같았고 우리는 커플링을 맞춘 적은 없짐나, 언젠가 그의 반지를 껴보았을 때 그마저도 내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란―기쁘거나 슬플 수는 없었으므로―기억이 있다.” (p.134) 정말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지는 문장이다. 이성애자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에서라면 불가능할 묘사일 터이다. 다만 이런 디테일과는 별개로 끝나도 쉽게 끝나지 않는 어떤 연애의 이야기라는 지점은 이성애자라도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
「마이 리틀 러버」
“그래서 만났다. 그래서 만난 건 아니지만 만났고, 연락을 다시금 주고받았고,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무엇이든 말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만났고, 헤어졌지만 서로가 잘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만났다. 서로의 불구와 불감을 조언해주려 만났고, 새 사람과 잘 되지 않아서 만났고, 잘되라고 만났다. 우리가 헤어져서 깨달은 단 하나가 있다면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그렇기에 만났고, 이도 저도 아닌 관계라고는 말할 수가 없겠고, 관계라는 말은 우리 둘만 있을 때에는 필요가 없는 단어였으며, 내가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더라도, H가 지금의 남자와 만나고 있더라도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pp.203~204) 여름에서 시작되어 가을과 겨울을 거쳐 다시 봄으로... 내가 사랑하였던 남자 그리고 나를 이해해주는 남자라는 구도는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그게 이렇게 여기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 생활」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 수상작이다. “저는 외골수가 아닙니다. 저는 눈치를 아주 많이 보고, 또 모든 것을 파악하길 원하고 알고 싶어합니다. 모든 것이 밝혀지길 바라고 투명하길 바랍니다. 저는 비밀이 없었으면 좋겠고 거짓말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말해도 좋을 공간으로 소설 외의 것을 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믄 산문의 잡식성은 그 구질구질함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제가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며, 그렇기에 제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산문은 제게 가장 자유로운 예술 장르입니다.” (pp..324~325) 이렇게 말한 다음 문단은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로 시작된다. 사실 소설은 이 ‘하지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너무도 솔직하게 말하는 작가의 ‘그런’ 생활로 가득하다. “꿈인지 생각인지 혼미한 문장-풍경 사이로 여름을 예비하는 작은 잎들이 내 눈앞에서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여름의 춤,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어쩌면 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그런 생활이 될 것이며, 그건 내가 바로 그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고, 때로는 그들만이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그런 글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생활을 했다.” (pp.332~333)
김봉곤의 소설들은 억제되지 않은 자기복제의 결과물들 같다. 거기는 많은 작가가 두려워하고 있으면서도 불가피하게 끌려들어가는 블랙홀 같은 곳인데, 김봉곤은 큰 두려움 없이 그곳을 들락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문장을 만드는 작가의 재능이 (아직까지는)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작가의 삶의 주재료와 만나서 나름의 독특한 소설을 만들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시작된 독서가 점차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김봉곤 / 시절과 기분 / 창비 / 361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