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죽음과 상실의 속성으로 촘촘한 하늘과 지상과 지하의 광경...

by 우주에부는바람

아내에게는 분명 특이한 구석이 있지만 나는 아내의 평범한 구석 때문에 (만약 내가 결혼을 하기로 한다면 아내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우리가 결혼하기 팔 년쯤 전에, 우리가 만나고 일 년쯤 후에 이뤄졌다. 나는 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는데, 내가 아내를 아내로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만큼 아내는 평범한 구석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만큼이나 특이한 점이 도드라지기도 했다.


“...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이는 필요할 뿐 아니라 그만큼 정상적인 행위로 느껴진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나 그날 하루 동안 끝낸 일)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한다. 운전을 하면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가리켜 보인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말로 옮긴다. 사라진 우리의 내밀한 언어를 계속 살려낸다. 나는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그녀도 나에게 장난을 친다. 우리는 그 말들을 외우고 있다. 그녀의 음성은 나를 진정시키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나는 내 책상 건너편에 놓인 작은 사진 속에서 살짝 묻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를 보며, 그녀가 궁금해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대답을 한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진부한 집안일 이야기가 활기를 띠게 된다. 아내는 욕조 매트가 촌스러워 창피하다면서 갖다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부인의 눈에 이런 광경은 괴상하거나, ‘병적’이거나, 자기기만적인 습관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부인들이란 정의상, 비탄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pp.169~170)


줄리언 번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작가가 자신의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줄리언 번스의 아내 캐바나는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이기도 했는데, 2008년 10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쓰러진 이후 37일 만에 사망했다) 몇 년이 흐른 이후 작성한 일종의 비가이다. 하지만 그 비가에 가닿기 위해서는 두 개의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만 한다. 이 책이 더할 나위 없는 상실의 비가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어리둥절한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죽음, 그 진부하면서도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처하기엔 턱없이 미숙하다. 우리에겐 더 이상 죽음을 더 넓은 패턴의 일부로 삼을 능력이 없다. 그리고 E. M. 포스터가 말했듯,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 그래서 사별 이후에 당연히 찾아오는 비탄의 감정도 우리에겐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 되고 만다. 그 감정의 지속과 깊이는 물론이요, 그 색채와 결, 그것이 사람을 속이는 방식과 헛된 기대, 되풀이되는 습성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리고 맨 처음 받는 충격을 이야기해보면, 지금 막 얼음처럼 차가운 북해에 빠졌는데 생존을 유지해줄 장치는 우스꽝스런 코르크 오버재킷 한 벌뿐인 것과 다르지 않다.” (PP.112~113)


책은 세 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와 두 번째 챕터는 ‘비상의 죄’, ‘평지에서’이다. 각각의 챕터는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때로는 합쳐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비상의 죄’에서 두 가지는 열기구와 사진술이고, ‘평지에서’ 두 가지는 열기구와 수소기구이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였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p.109)


하늘로 날아오르는 최초의 도구였던 열기구와 그 열기구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현혹되었던 여인의 이야기로 책의 절반 정도를 채운 다음에야 줄리언 번스는 아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그제야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나가 되었던 것이 분리되어버렸을 때 벌어지게 되는 일련의 사태, 비탄과 애도와 고통으로 얼룩진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간 또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 제작법에 의거해 측량된 새로운 지형에 들어서게 된다. ‘상실의 사막’ ‘(무풍지대인) 무심의 호수’ ‘(말라서) 황무지가 된 강’ ‘자기연민의 습지’ ‘기억의 (지하) 동굴’ 등을 표시한 17세기 지도와 흡사한 그 지도에서 당신은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pp.138~139)


이렇게 기록되는 세 번째 챕터의 제목은 ‘깊이의 상실’이다. 비상하는 것에서 추락하는 것을 거쳐 그 아래로 내려가는 감정의 궤적, 수직으로 깊게 자국을 내는 이 형식을 작가는 (아마도 깊은 슬픔과 상실 속에서) 어렵게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마도 이 형식만이 하늘 높은 곳에서 지하로까지 떨어져 내린 감정, 그것이 일으키는 수평의 파문을 보여주기에 적당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비탄과 대비되는 애도의 문제가 있다. 비탄은 하나의 상태인 반면, 애도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둘을 차별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불가피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상태라는 것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일까? 과정이란 것은 갈수록 나아지는 것일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아마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비탄은 수직적이고 또 빙글빙글 도는 반면, 애도는 수평적이다. 비탄은 배 속을 뒤집어놓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하고, 뇌의 혈액 공급을 차단한다. 애도는 새로운 방향으로 당신을 몰고 간다. 그러나 이제 구름에 에워싸여 있기 때문에 당신은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건지, 아니면 남몰래 움직이고 있는 건지를 분간할 방법이 없다...” (pp.144~145)


작가의 이런 판단은 냉정해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옳다. 아내의 죽음이 내린 형벌 같은 시간을 도덕적으로 견뎌낸 이는, 아내의 죽음에 곧바로 주목되는 시선,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시선을 견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주 천천히 우리의 시선을 저 위에서 평지에로 끌어내리고, 그 다음에야 죽음에 의한 상실이라는 시간 이후의 광경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들이 마주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상실의 속성이 그 광경 안에서 촘촘하다.


줄리언 번스 Julian Barnes / 최세희 역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Levels of Life) / 다산책방 / 207쪽 / 20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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