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식 퀘스천 마크를 품고 있는 현실, 그 현실의 너머...
*2009년 11월 1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전 일본에 다녀온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일본에서 배출 가능성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밀고 있는 분위기란다. 그런 분위기까지야 잘 모르겠으나 얼마전부터 예전 『상실의 시대』의 하루키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뭔가 하루키와 노벨 문학상은 차원이 달라 보인다. 물론 노벨 문학상의 차원이 하루키의 차원보다 높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 속 패럴렐 월드처럼 다른 차원이랄까.
“Parallel World : 원래의 세계와 병행하여 존재하는 또다른 세계. ‘사차원 세계’나 ‘외계’ 개념과는 달리 우리가 사는 우주와 동일한 차원이다. ‘지금의 현실과는 별도로 또 한의 현실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특히 SF 소설 등에서 등장인물이 어느 겨를에 또다른 현실로 헤매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병행 세계, 또는 평행 세계라고도 한다.” (영화 <베르니카의 이중생활>이나 미드 <프린지>를 염두에 두면 될라나...)
저 옛날 <상실의 시대>의 시절과는 많이 달리진 <어둠의 저편>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의 하루키와 일맥 상통하는 이번 작품은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두 명이 끌어가는 두 개의 이야기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또 다른 세계인 리틀 피플의 세계 그리고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를 교묘하게 중첩시켜 보여면서 독자들을 있지 않은 일과 있지 않은 세계로 현혹하여 불러들인다.
물론 하루키는 우리가 발 디디고 있다고 자신하는 현실을 향하여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라고 외치면서도 동시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에 굳건히 발디뎌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덧붙여 실수로 내딛은 헛발에 의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설령 헛발을 디뎠다면 그것을 다시금 원상태로 돌려 놓는 책임까지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은 어찌되었든 지금 이 세계를 향한 묘한 의구심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1Q84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오마메는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4년이다...”
소설에는 전공투 시절 일본의 학생 운동, 색다른 공동체 집단과 그것이 발전하여 만들어진 유사 종교 집단 그리고 그 종교집단에서 행해지는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라는 표상이 어지럽게 표현되는가 하면, 사회악을 처단하는 사적인 킬러와 그 킬러를 돕는 유순한 노분인과 그의 보디가드, 천재적인 글쓰기를 수행하는 어린 소녀와 이야기의 핵심으로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대필 작가가 시시각각 등장한다.
정확히 어떤 세계관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소설 속의 세계관은 오히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관을 향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소설이 일본 사회 혹은 현대 문명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함들을 요리조리 손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소설이 굳이 ‘1984년’ (그러니까 소설의 제목이 1Q84년인 것은 1984년에 퀘스천 마크를 포함시킨 것이다) 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끌어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년』에서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를 등장시켰어... 그리고 바로 지금, 실제 1984년에 빅 브라더는 너무도 유명하고 너무도 빤히 보이는 존재가 되고 말았어...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야.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지. 하지만 그건 분명하게 우리의 발밑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픽션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그만큼 복잡하며 그래서 그만큼 우리들 인간을 소외시키는 중인 현대 사회에 대한 하루키의 재기발랄한 문제제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속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은 부족하다. 가끔은 스스로가 창조한 소설 속의 몽롱하고 애매한 세계에 대하여 스스로도 부연 설명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것만 같다.
“... 독자들은 달이 하나 떠 있는 하늘은 지금까지 수없이 봤어... 하지만 하늘에 달 두 개가 나란히 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을 거라고. 대부분의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소설 속에 끌어들일 때는 되도록 상세하고 적확한 묘사가 필요해. 생략해도 괜찮은 것, 혹은 반드시 생략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이미 목격한 적이 있는 것에 대한 묘사야.”
우리에게 언제나 몽롱하지만 그 몽롱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역설적으로 힘을 가지는 현실을 보여주었던 하루키가, 스스로 현실 속으로 좀더 힘차게 발을 내딛고 이를 환상에 등 붙이는 형식으로 구현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인 듯하다. 어딘가 완성되지 않은 듯한 미완의 세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완성 후의 세계가 기대되는 하루키의 행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역 / 문학동네 / 1권 656쪽, 2권 597쪽 / 2009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