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 《오릭스와 크레이크》

인간의 멸절에 기여하게 될 수도 있는 여러 징후들을 결합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2008년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오릭스와 크레이크》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제목은 ‘인간 종말 리포트’였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거의 멸절에 이른 상태에서 소설은 시작되고, 남겨진 인간 ‘눈사람’이 이제는 없는 인간 ‘크레이크’와 ‘오릭스’라는 과거를 더듬어 인간종이 멸절에 이르게 된 연유를 밝혀나가는 것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그러니 ‘인간 종말 리포트’라는, 소설의 번역된 제목은 꽤나 직관적인 것이었다.


“지미의 가장 좋은 비밀 친구는 살인자였다. 진실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너구컹크라니, 측은한 일이었다. 지미는 할 수 있는 한 부모를 외면했다. 아버지는 코르크넛이었고, 어머니는 무위도식자였다. 지미는 그들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게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따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니,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102)


소설에는 정확한 연도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소설 속의 세계는 확실한 계급 분화가 이루어진 다음의 세계이다. 바이오 산업을 주축으로 한 기업 집단이 조합이라는 형태로 한 축을 이루며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고, 나머지 인간들은 평민촌에 살아간다. 두 그룹은 다른 배경에서 자라나고 살아가게 되지만, 완벽한 분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민들의 세계에 속한 이들은 조합의 작동 매커니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조합의 사람들은 평민의 삶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 새로운 게임이란 멸종마라톤이었다. 그가 사이트에서 발견한 이 게임은 희귀 생물에 대한 거대한 학문을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 게임이었다. 멸종마라톤. 감독 미친 아담. 아담은 살아 있는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고, 미친 아담은 죽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 게임을 하시겠습니까? ... 게임은 다리의 개수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이란 과거 50년 사이에 멸종되어 버린 생명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티라노사우로스 렉스, 로크, 도도새 같은 것은 해당되지 않았다. 시기를 혼동할 경우 감점이 되었다. 그런 다음 문, 강, 목, 과, 속, 종으로 좁혀 나가고 그 후에는 서식지와 마지막으로 목격된 때, 무엇 때문에 멸종되었는지(오염, 서식지 파괴, 특정 동물의 뿔을 먹으면 정력이 증강된다고 믿는 바보들)를 알아맞혀야 했다...” (pp.137~138)


제목에 등장하는 ‘크레이크’는 조합에 속한 인물이며, 그 인물들 중에서도 특출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류 멸절 이후에도 남게 된 지미는 크레이크의 친구였으며, 지금은 스스로를 ‘눈사람’이라고 명명한다. ‘오릭스’는 지미와 크레이크가 어렸을 때 인터넷에서 발견한 성착취 아동이다. 둘이 성장한 이후 크레이크는 ‘오릭스’를 발견하여 자신의 비서로 두었고, 지미가 크레이크에게 합류한 이후에 지미는 오릭스를 사랑하게 된다.


“한때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이곳의 팀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크레이크는 말했다. 그것을 통해 변화한 것은 다름 아닌 오래된 영장류의 두뇌였다. 그것의 파괴적인 특징, 즉 현재 세계의 병적 상태를 유발한 특징은 사라졌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주의(혹은 파라디스에서 소위 의사 종분화라고 부르는 것)는 단순히 인간 유대 기제를 교체함으로써 견본 집단에서 사라졌다. 파라디스 사람들은 피부색을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위계질서가 존재할 수 없다. 위계질서를 창조해 냈던 신경 복합체가 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냥꾼도 아니고 땅에 굶주린 농지 경작자도 아니기 때문에 텃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백성들을 괴롭히던 ‘성안의 왕’이라는 꼭두각시용 조종 줄은 그들에게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들은 나뭇잎과 풀과 뿌리와 한두 가지의 나무 열매만을 먹고 산다. 그들의 성(性)은 계속되는 괴로움이 아니며 사나운 호르몬의 구름도 아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처럼, 그들 역시 정기적으로 발정기에 도달한다.

사실 이들은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가계, 결혼, 이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거주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기 때문에 주택이나 도구 혹은 무기 같은 것, 또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옷도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이들은 왕국, 성상, 신, 돈 같은 위험한 상징적 표현을 고안해 낼 필요도 없다. 가장 좋은 점은 자신들의 배설물을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유전적 재료를 결합시킴으로써······.” (pp.510~511)


소설에는 돼지구리, 너구컹크, 늑개, 뱀쥐와 같은 유전자가 섞인 새로운 형태의 동물들이 나오는데, 이는 인간이 멸종한 이후에 남겨지게 되는 ‘크레이크의 아이들’ 혹은 ‘크레이커’들의 등장을 뒷받침한다. 크레이크는 먼저 ‘환희이상’이라는 알약을 만들어, 오릭스를 통해 세계에 퍼뜨린다. 이와 함께 인간이 가진 나쁜 속성을 제거한 새로운 형태의 인류를 만들어내고, 오릭스로 하여금 이들을 교육하도록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쾅, 환희이상에 숨겨져 있던 특이 바이러스가 작동을 시작하고, 인류는 아주 짧은 순간만에 사라지게 된다.


“저는 주브 바이러스가 이곳 파라디스 돔에서 크레이크가 직접 고른 그리고 이후에 제거해 버린 유전자 조작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 뒤에 환희이상 제품에 삽입되었다는 사실을 보고 드릴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보급을 위해 계시 노출 요소가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분량의 바이러스는 모든 선택된 지역에 살포될 때까지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질병이 일련의 신속하고도 중복된 파도의 형태로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계획이 성공을 거두는 데는 시간이 핵심적 요소였습니다...” (p.577)


사실 인간의 이루었다고 자평하는 과학적 성취가 도리어 인간의 멸절에 기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여러 경고들은 상상의 단계를 넘어 이제 보다 실질적인 징후들로 다가서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재앙이나 생명 공학의 윤리 문제가 거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끝 모를 인간의 욕망이 낳은 국가의 경계를 뛰어 넘는 초국가 거대 기업과 극심한 빈부 격차는 축에 연결된 또 다른 바퀴처럼 인류를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펼쳐 보이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은 그 차창으로 보게 되는 풍경일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 차은정 역 / 오릭스와 크레이크 (Oryx And Crake) / 민음사 / 632쪽 / 2008, 20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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