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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단순한 진심》

원인과 결과라는, 과거와 현재라는 양축의 아귀를 적절한 수준에서...

by 우주에부는바람

재작년인가 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소설은 그 인물들의 지난 과거로 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연원은 반드시 과거에 있다고 너무 크게 소리친다. 소설 속에서 현재는 항상 어떤 과거의 결과일 뿐이지, 어떤 미래의 원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라고 적었다. 작가가 소설을 구성하는 과거지향적인 방식이 패턴화되어 있고, 그것이 조금 지독하게 느껴진다고 적기도 했다.


“... 꽤 긴 시간을 잤는지 방에는 어둠이 손님인 양 와 있었다. 내가 지금 파리가 아니라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천천히 상기되었다. 나의 고향, 나의 친정, 그러나 지금은 나쁜 꿈을 꾸었을 뿐이라고 위로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 나는 반사적으로 배 위에 두 손을 얹었다. 이 아연한 공포의 순간, 우주만이 실질적인 위로였다.” (p.48)


이러한 작가의 방식은 장편 소설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인 문주 혹은 박에스더 혹은 나나는 대여섯 살에서 프랑스로 입양되어 이제 성인이 된 인물이다. 별 수 없이 그 인물의 현재 보다는 과거에 자꾸 눈이 간다. 현재 그가 잉태하고 있는 아기가 이런저런 설명으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재일 뿐이다.


“아빠는 무늬의 의미가 있는 ‘문’이라는 글자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에게도 그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지어준 거겠죠. ‘문’이 무늬라면 남는 건 ‘주’인데, 제 생각에 아빠는 우주의 ‘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어요.” (p.228)


최초의 기억에 ‘문주’라는 이름이 있는 프랑스인 ‘나나’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출연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왔다. 그녀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 ‘서영’은 그녀가 한국에서 머물 수 있도록 자신의 방을 내어주는데, 그 아래층에는 복희 식당이 있다. ‘서영’이 영화를 결심한 이유는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다 입양을 보낸 노파 ‘추연희’의 이야기 때문이다. 추연희는 복희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내게 추연희라는 이름은 복희 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생, 백복희의 두 번째 엄마······.” (P.176)


소설은 자신을 낳은 여인을 찾는 대신 자신을 철로에서 발견하여 일 년 동안 거두었던 기관사를 찾는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여인을 거두고 결국 그 여인의 아이를 입양 보내게 된 복희 식당의 추연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와 복희는 서로 다른 시원을 두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거두어졌다가 또 결국엔 해외 입양이라는 결과를 피하지 못했다는 공통의 과정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영화를 봅니다.

한 달 전 파일로 받은 가편집된 영화죠. 청량리역 철로에서 시작되어 이태원과 인천, 아현과 합정과 영월을 지나 인천공항에서 끝이 나는, 정문주였고 박에스더였으며 나나이기도 한 주인공을 비롯해서 젬마 수녀, 정문경과 박수자, 그리고 백복희가 출연하는······. 벌써 수십 번을 봤는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이유는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서영과 소율, 은의 표정과 몸짓이 상상되어서겠죠. 그리고 한국에서 보낸 여름과 그 흘러가는 여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250)


소설은 한때 그리고 여전히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하고 있는 입양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인과 결과라는, 과거와 현재라는 양축의 아귀를 적절한 수준에서 맞추어내고 있지만 어쩐지 평이하다. 아마도 그 평이함을 마이너스로 여기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것인 듯, 상영되지 못한 영화를 만든 양아버지의 전력이나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적당히 숨겨진 추연희의 과거가 등장하지만 역부족이다.



조해진 / 단순한 진심 / 민음사 / 263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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