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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나의 시선으로 제3자를,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체스의 모든 것」

  “...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면서 무슨 대화가 저렇듯 열띠면서도 무시무시하게 공허헌가 생각했다. 대체 체스가 뭐라고, 저렇게 싸우는가. 우리 사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것 잘하면 밥이 생기나, 장학금이 나오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배가 마치 목격자가 필요한 것처럼 국화에게 가자고 하면 거절 못한 채 따라나섰다.” (p.21) 노아 선배와 국화의 오래전 일화, 그 중심에 있는 체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처럼 공허하다. 룰이 있으나마나, 승자도 패자도 있으나마나 하였던 과거의 노아 선배와 국화가 몰두하였던 체스는 사라졌어도 삶은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두 사람은 나이가 들었고,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내가 있다.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냉혈한 고용주’인 사장의 어슴푸레한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로맨스인지 사장의 로맨스인지 알 수 없다. 그 대상은 은수라는 남자인데, 은수를 쫓아가 발견하는 마지막은 꽁트에 가깝기는 하다. 눈이 내린 날 비탈길에 밧줄을 매달아야 하는 빙판길 위의 동네에 대한 표현은 좋다. 물론 그것도 허구였을 수 있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출판사를 하다가 말아 먹은 나의 책들은 장사가 잘 되는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장인 어른의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 아내 기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사이 나는 낸내, 라는 아이디를 가진 어린 여자와 내가 출판하였던 책을 매개로 삼아 몇차례 만나게 된다. 


  「레이디」

  소설에는 엑스재팬을 좋아하던 나의 요시키와의 펜팔, 친구 유나와 그 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 나와 유나 사이의 어설픈 성애가 두루두루 펼쳐져 있다. “우리가 가능한 한 가까워지기 위해 파자마를 벗고 서로를 끌어당겼던 밤과, 마치 상관없는 사람 얘기를 하듯 엄마의 혹평에 유나가 동의했던 어느 밤, 그리고 회계사 사무실 직원에게 들은 레이디, 라는 단어가 여름 빗소리를 뚫고 반짝이던 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건가...” (p.127) 그러니까 어쩌면 ‘그런 부유물들의 정체는 알 수 없거나 깡통 같은 쓰레기, 혹은 물고기이거나 그저 환상’일 지도...


  「문상」

  “...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pp.148~149) 문상을 위하여 오고가는 송의 길 위에서 조금 드러나는 희극배우의 길...


  「새 보러 간다」

  “... 그런 저자들은 많았다. 수집은 목록의 작성이고 애호는 취향의 드러냄인데 그런 걸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기란 어려웠다...” (p.176) 그 어려운 일을 윤에게 시켜야 하는 출판사 직원 김수정의 고군분투가 그려지고 있다.


  「모리와 무라」

  엄마인 해경과 나, 그리고 숙부가 함께 하는 일본 여행의 이야기이다. 호텔리어로 평생을 살고 이제 은퇴한 숙부의 이런저런 태도가 깔끔하게 그려지고 있다. “... 운주는 뭘 잡는지 허공을 잡아챘고 그것이 꽃잎이었는지 하루살이 같은 날벌레였는지 아니면 빈주먹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손을 풀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었다.” (p.202) 그리고 나는 헤어졌던 운주와 다시 만나 결혼을 하였고, 그사이 숙부는 돌아가셨다.


  「누구 친구의 류」

  남편의 쌍둥이 동생인 현경과 그의 옛날 남친인 류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니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본인의 시선보다는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작가는 종종...


  「쇼퍼, 미스터리, 픽션」

 “... 소설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겠다는 선언과 하지만 그것에 대해 폭로하고 말겠다는 다짐 속에서 신열을 앓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물론 연애도 했다. 하지만 애인들에게조차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성의가 없었으므로 오래가지 못하고 시든 배추처럼 종결되곤 했다. K는 실연을 경험하고 나서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도리어 고양감 같은 것을 느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깊게 깊게 파고들어가면서 곪고 썩어가는 과정을 괴상한 희열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고통에 대해 깨닫지 못한 어떤 마비 상태이기도 했지만 어떻든 그것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263) ‘사랑, 그것 따위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하며 책이나 읽던 소녀 K는 그렇게 책만 읽다가 작가가 되었고, 폐장을 앞두고 있는 야시장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청년으로부터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건성건성...



김금희 / 오직 한 사람의 차지 / 문학동네 / 294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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