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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박경리 《일본산고》

일본 집권 세력의 본심을 향하고 있는 노골적인 거부의 인식으로 읽다...

  “괴기와 탐미는 약간씩 다르다. 그러나 상통하는 점도 많다. 감각에 충격을 주는 면에서 그렇고 보편성과 휴머니티의 결여, 윤리 부재 또는 반도덕적인 것에서도 공통된다. 그리고 특이하지만 출구가 없는 것도 비슷하다. 그것은 총괄적인 인간의 삶 자체가 대상이라기보다 심층에 깔려 있는 인간성의 어느 부분의 의식을 끌어내어 그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p.55)


  1990년대 이후 일본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고 나서 일본의 소설을 실컷 읽었고,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망가를 실컷 보았고 일본의 음악을 실컷 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정치는 물론이려니와 문화 전반까지 아우르는) 독재와 폐쇄의 터널을 지난 다음이어서 많은 부분 신선하고 달콤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 십여 년이 그렇게 훌쩍 흘러간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들해졌고 이제는 예전만큼 읽거나 보거나 듣지 않게 되었다.


  “...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게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pp.86~87)


  박경리 선생의 《일본산고》를 읽었다. 2008년 타계한 선생의 원고 중 일본 관련된 것을 모아 엮은 산문집이다. 신채호 선생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변주한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사과하고 곧바로 망언을 터뜨리고, 교묘한 말로 반성하고 다시 망언을 거듭하는 일본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 읽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한국의 반일에는 항상 역사를 동반하며 그것을 증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유의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들 일본인은 소위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않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혹은 역사는 역사로서 현재와 무연한 것으로, 방편으로 씌여지는 정신적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만세일계를 주장해온 천황의 역사, 다시 말하자면 역사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으며 같은 일본인의 ‘역사성’이야말로 근린제국(近隣諸國), 제민족(諸民族)에게는 지극히 수상쩍게 보일 것이다.” (pp.67~68, 가와무라 미나토, <문예> 중)


  일본 문학에 대한 선생의 진단에 대해서는 과연 그런가, 라며 유보의 입장을 띄게 된다. 1926년 생으로 직접 식민시절을 겪은 작가가 가지는 반감을 체로 걸러내어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작가 스스로 ‘민족적 감정 때문에 사시(斜視)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염려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본의 민족적 기질 전반을 향하고 있는 노골적인 부정의 인식 또한 (속은 후련하지만)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일본인은 집단적 심리에의 경향이 짙다. 그것은 집단에 대한 복종을 뜻하며, 따라서 권력에 약하고 강자 숭배는 거의 생리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일부 한국인들은 매우 바람직한 장점으로 꼽는 것 같다. 사실 복종은 단결이며 민족의 역량을 한곳으로 모아 발전으로 몰고 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부정 못한다. 그러나 연약한 짐승들이 무리를 지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생존해가는 것과는 다르게 인간의 경우에는 생존의 한계를 넘어선 욕망이 있기 때문에 왕왕 그것은 화약고가 되어 폭발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pp.80~8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노골적인 인식을 아예 거부하기도 힘들다. ‘신국, 만세일계, 현인신’의 유지라는, 작가의 노골적인 인식의 근거가 황당하지 않나 여겨지는 참에 아베 정권의 근간이라고 의심이 되는 ‘일본회의’의 존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프로그램에는 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생장의 집’이라는 종교단체가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이 작가가 의심하고 있는 일본 우익 사상의 실체와 떼어놓기 힘들다.


  “... 압도적으로 너무나 긴 세월 변하지 않고 사람들을 죄어왔으며 맹목적으로 길들여온 것은 역시 신국, 만세일계, 현인신이라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그것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일관되게 무장한 칼바람 군국주의의 주도 속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겠습니까. 탐미와 쾌락, 거기에 보태어지는 것이 허무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서인 와비[侘]와 사비[寂]는 한적함을 뜻하지만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주음의 미학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사람으로서 자살 이상의 철저한 파괴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파괴하는 것도 철저할 것이며 그 정열을 저지할 도덕이나 윤리가 무력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p.140)


  민족이니 애국이니 하는 말이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얼마나 촌스러운 것인지 모르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위하여, 라는 모토 아래 무수한 왜곡과 변태가 일상화되어 있던 독재의 시절을 모르지 않으니 위험천만하다는 생각도 버리기 힘들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정학적 불운을 천형처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집권 세력이 일본의 극우를 빼닮은 한국의 극우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뿐...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p.192)



박경리 / 일본산고 (日本散考)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 마로니에북스 / 205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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