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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김민철 《서울 화양연화》

저 많은 꽃과 나무와 풀을 무명의 것으로 남겨놓지 않기 위해...

*2019년 10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내와 나의 주말 일정은 이렇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신 다음 녹번역 거치대에서 따릉이를 빌려 타고 산골 고개를 넘어 홍제천을 따라 이동하다가 서대문 구청 쪽으로방향을 틀어 서대문 보건소 옆 거치대에 따릉이를 반납한다. 서대문 구청 뒤에 있는 서대문청소년수련관의 수영장에서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한다. 내려와 서대문 보건소의 거치대에서 따릉이를 빌려 연남동으로 향한다.


  “우리 셋 중 구절초는 대부분 흰색인 데다 잎이 쑥처럼 갈라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별하기가 쉽습니다. 저(벌개미취)와 쑥부쟁이는 둘 다 연보라색인 데다 생김새도 비슷하답니다. 쉽게 구별하려면 잎을 보면 됩니다. 저는 잎이 길고 잎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지만, 쑥부쟁이는 대체로 잎이 작은 대신 ‘굵은’ 톱니가 있지요.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 중에는 노란색 무리도 있습니다.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노란 들국화 중에서 꽃송이가 1~2센티미터로 작으면 산국山菊, 3센티미터 안팎으로 크면 감국甘菊이랍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가 대표적인 들국화입니다.” (p.68)


  연남동에 도착하면 일단 적당한 거치대에 따릉이를 반납한다. 그리고 연남동 경의선숲길을 잠시 산책하고는 적당한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와 아내의 주말 이동 경로이다. 그렇게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코스모스를 발견한 아내가 꽤나 반가워했다. 코스모스 근처에 이식되어 있는 또 다른 꽃무더기가 있었는데, 아내의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꽃 이름을 말해주지 못했다.


  “... 은행나무는 열매가 떨어지면 지저분해지고 악취가 났다. 수나무만 심으면 문제 없지만 15~20년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암수를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2011년 DMA 성감별법을 개발해 지금은 수나무만 골라 심을 수 있다...” (p.106)


  네이버의 스마트렌즈나 다음의 꽃검색을 이용하면 쉬이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한 프로그램에서 작가 김영하는 이 획기적인 시스템에 흠뻑 빠졌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그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전에 나도 몇 번 이 시스템을 이용해보기는 했다. 나는 그렇게 홍제천 옆의 화살나무를 구분해낼 수 있었고, 장모님과 산책하던 동네 공원에서 불두화를 발견해내기도 하였다.


  “가을에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꼽으라면 여뀌를 빼놓을 수 없다. 6~10월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색 꽃이 좁쌀처럼 촘촘히 달려 있는 것이 여뀌 무리다. 청계천 등 습지는 단연 여뀌들 세상이고, 산기슭이나 서울 도심 공터에서도 여뀌 종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다.” (p.211)


  그러고 보면 이런 검색 시스템이 없을 때에도 꽃과 풀과 나무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는 책을 즐겨 구매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꽃과 풀과 나무를 명명하는 수준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 수준을 올려보고 싶다는 열망만 나이가 먹을수록 커지고 있으니 안타깝다. 그래도 최소한 아래에서 거론된 ‘4대 길거리꽃’과 ‘7대 가로수’만은 알아차려보자, 고 다짐한다. 그러고 보니 그날 아내가 물어보던 꽃은 팬지와 피튜니아였다고 짐작해본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식물 이름을 알고 바라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이름을 아는 것은 대상과 ‘아는 사이’가 된다는 뜻이다. 도심에 많은 팬지 · 피튜니아 · 마리골드 · 베고니아 등 ‘4대 길거리꽃’과 은행나무 · 양버즘나무 · 느티나무 · 벚나무 · 이팝나무 · 회화나무 · 메타세쿼이아 등 ‘7대 가로수’ 정도만 알아도 거리를 걸을 때 느낌이 다를 수 있다.” (p.237)


  물어보면 꽃이나 나무의 이름을 척척 말해주는 사람을 친구로 두어보지 못했다. 책에는 야생화의 고수며 그들이 모여 있는 동호회, 그 동호회에서 떠나는 꽃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책에는 문학의 어느 갈피에 있는 꽃이나 나무를 끄집어내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을 나무라는 노작가도 등장한다. 여하튼 눈에 띄는 저 많은 꽃과 나무와 풀을 무명의 것으로 남겨 놓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이긴 하다.



김민철 / 서울 화양연화 / 목수책방 / 351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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