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다양하게 소환하여...
근미래 소설로 분류될 법한 소설들이 몇 편 실려 있지만 그것이 언제쯤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소설들의 시작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다. 그러니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그 시원이다. 작가는 2011년에 쓴 <불사의 섬>을 토대로, 이것을 확대시켜 <헌등사>라는 소설을 만들었다. 책에 실린 <헌등사>는 중편 소설의 분량이고, 나머지 소설들은 단편 소설이다.
「헌등사」
“요시로 세대가 정말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지 어떤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단 죽음을 빼앗긴 상태에 있다는 건 확실했다. 육체가 그 한계까지 사용되어 너덜너덜해져서 생물로서 한계가 찾아온다면, 움직일 수 없게 된 살덩어리 속에서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의식만이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몸무림칠지도 모른다.” (p.125)
요시로는 이미 100세가 넘었고 십대인 증손자 무메이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시점 이후 , 그러니까 아마도 대지진 이후 정확하지 않은 이유로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영향이라 유추할 수 있는) 나이 든 이들은 더 이상 죽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70대는 젊은 노인이고, 90대가 되어야 겨우 ‘중년 노인’으로 분류된다. 대신 새로 태어난 이들은 생래적으로 약하다. 그래서 100세가 넘은 요시로가 십대의 무메이를 보해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 일본과 해외를 연결하는 선은 모두 끊기고 말았다. 그 탓인지 지구는 둥글다고 발바닥이 느끼는 일도 없어졌다. 여행이 가능한 둥근 원이 존재하는 것은 머리의 내부뿐이었다. 머리 안쪽의 곡선을 따라 안쪽을 여행할 수밖에 없다.” (p.38)
이와 함께 일본은 나라의 문을 닫아걸었다.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거나 외국으로 물건 혹은 사람을 반출하는 일은 흔치 않다. 외국과의 거래나 교류는 이제 없거나 비밀리에 진행될 뿐이다. 책의 제목인 헌등사는 이러한 쇄국의 시기에 다른 나라로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하는 모임의 이름이다. 이들은 청소년 혹은 청년 중에서 대상을 물색하고 지목된 이들을 나라 밖으로 내보낸다. 소설의 말미에 무메이는 헌등사의 일원이 된다.
“헌등사 모임에는 회보 같은 것은 없고 전원이 한 번에 잔뜩 모이는 회합도 없었으며 3명이나 4명이 개인의 집에 모여 이야기를 할 뿐이므로 모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없었다... 단, 스스로 자신이 회원임을 자각하는 작은 의식이 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하루의 일을 시작할 때 초에 불을 붙여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초의 크기는 직경 5센티미터에 높이 10센티미터로 정해져 있다.” (pp.174~175)
동일본대지진이라는 거대한 사태와 그로 인한 사회 시스템의 균열이라는 실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사회가 폐쇄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문을 닫아버린 것인지도 모호해져버린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조용조용 아름답게, 라는 모토를 떠올릴 수 있다.
「끝도 없이 달리는」
“성격이 온화(穩和)한 남편과 아즈마다 이치코는 전문대를 나온 봄에 성급(性急)히 중매로 결혼해, 취업(就業)도 아직 되지 않았는데 남편의 직장인 이바라키에 도쿄(東京) 변두리의 애완견 가게에서 산 시바견을 데리고 이사했고, 부부와 개 한 마리로 이루어지는 삼각형 모양의 가정을 이루었는데, 그 개는 인간의 7배 속도로 노쇠해 세상을 떠났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며, 남편이 사라지자 이치코는 홀로 이 세상에 남겨졌다. 남편이 남겨둔 것은 ‘아즈마다’라는 성과 생활에 곤란하지 않을 만큼의 보험금과, 융자를 다 갚은 집과 태산만 한 크기의 고독이었다.” (p.190) 남편 사후 꽂꽂이 교실을 나가게 된 이치코, 그곳에서 만난 다바다 토오코라는 여성, 두 사람이 차를 마시고 서로를 좀더 알아가려는 찰나, 지진이 발생하고 두 사람은 피난소로 떠나는 버스에 함께 오르게 되고, 그곳에서 둘은 ‘거센 행위’를 치르게 된다.
「불사의 섬」
“... 2011년 후쿠시마에서 피폭당했던 당시에 100세를 넘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건재하고, 다행히도 이제까지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이것은 후쿠시마만이 아니라, 그 후 수년 사이에 차례로 핫스팟이 되어간 중부 관동 지방의 22개소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피폭자 중에서 최고령자는 당시 112세였는데, 120세를 넘어도 아직 팔팔하다... 2011년에 아이였던 사람들은 차례로 병에 걸려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간호가 필요했다. 어찌 되었든 매일 받는 방사능은 미량이라도, 세포가 활발하게 분열해가면 순식간에 100배, 1,000배로 늘고 만다. 따라서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위험하다...” (pp.220~221) <헌등사>의 배경이 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불사, 라는 염원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실현되었을 때, 그 반대급부로 우리가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는 여러 상황들이 나열되고 있다.
「피안」
“...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몰래 만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던 고교생들은 폭음에 뺨을 얻어맞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천공을 반쯤 감출 정도로 커다란 갈색 우산이 천천히 펴지는 것을 보았다. 다카오산에서 하이킹을 하다가 오렌지색 용과 녹색 용이 구름 침대 위에서 서로 뒤엉키는 것을 목격한 등산 서클의 연금생활자들. 기요사토에서 폭발음으로 산이 흔들려 절벽이 무너져 내렸고, 차례로 쓰러진 수십 그루의 삼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향하며 일제히 정지한 것을 본 90세의 화가가 훨씬 나중에 그때의 모습을 유화로 그렸다. 이바라키에서는 땅콩 밭으로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선 순간, 하얀 가루에 휩싸여 눈앞이 보이지 않게 되고, 목이 막혔고, 기침을 터뜨렸고, 기침이 멎지도 않아, 기침 탓에 정신을 잃어버릴 수조차 없어서, 너무나도 격심한 기침에 늑골이 산산조각이 날 듯한 아픔 속에서, 앞뜰의 흙에 얼굴을 문질러 바르고 그대로 흙이 되어버린 숙부를 집 안에서 본 아이들도 있다.” (pp.233~234)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원자력의 이용에 맞물려 있는, 예상하지 못한 단 한 번의 사고로,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에 대한 작가의 우려가 담겨져 있다. 여기에 이러한 사고 후 국가를 떠나 도망가는 정치인의 추레한 모습을 보탬으로써, 그러한 사고를 정치인의 말로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강하게 보여준다.
「동물들의 바벨」
곰이 말한다.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인간도 있었고, 전쟁을 좋아하지만 자기는 전선에 나가지 않는 인간도 있었고, 전쟁이 싫은데도 전쟁으로 죽는 인간도 있었어.” 여우는 인간이 없는 지구를 찬성하고, 토끼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다람쥐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고양이는 인간이 있는 편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개는 말한다. “인간이 없는 세계 따위 의미 없어! 인간이 없으면 개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지. (오랫동안 뜸을 들임) 하지만 개라는 게 내게 그만큼 중요할까?” <동물들의 바벨>은 일종의 부조리극 대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홍수가 지나간 후, 아마도 인간이 사라진 것 같은 지구의 동물들이 모여서 인간을 닮거나 닮아 있지 않은 사고 회로를 거친 것 같은 대화를 나눈다.
다와다 요코 / 남상욱 역 / 헌등사 / 자음과모음 / 303쪽 / 2018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