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주주》

'몇 번이든' 궁지에 몰려도 이해에 이해를 거듭하면서...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 《주주》의 ‘주주’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고 엄마가 홀을 맡아 운영하는 스테이크와 햄버그를 파는 가게이다. 나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가게 운영을 함께 했다. ‘주주’라는 이름은 엄마가 오래전부터 좋아했고 나도 좋아하는 아사쿠라 세카이이치의 《지옥의 살라미 짱》이라는 만화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보다 본격적으로 가게 일을 하고 있다. 엄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살라미를 그린 아사쿠라 세카이이치 씨는 후기에 이런 말을 썼다. ‘살라미는 성격이 참 나쁘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인 데다 주위에 폐만 끼치고. 하지만 그건 살라미 자신도 잘 알고 있어요.(아마도) 눈앞에 벽이 있으면, 부수죠. 부수려면 자신도 아플 테죠. 그런데도 멈추지 못합니다. 그걸 멈추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은 것이죠. 작가로서, 그런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p.14)


소설은 그럭저럭인데 몇몇 곳에서 현실의 상황을 떠올렸다. 얼마 전 후배 L로부터 자신의 업무에서 비롯된 재판 소식을 들었다. 《지옥의 살라미 짱》의 주인공인 살라미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일자마자, 설령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 이라는 소신이 뚜렷한 후배 L이 떠올랐다. 둥글둥글이 몸에 밴 나는 L이 안쓰러울 때가 간혹 있지만 역시 L은 ‘눈앞에 벽이 있으면’ 부수어야 L답다.


“숨을 쉴 때마다 페로의 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쪽에서는 같은 동물의 고기를 갈고, 이쪽에서는 갈비뼈에 붙은 살이 오르내리는 것을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있다. 이 모순이야말로 인간다운 지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p.23)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는 얼마 전 고기 뷔페집에 들어가서 동물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시위 영상이 떠올랐다. 우리가 먹는 것은 고기가 아니라 동물이며 동물을 죽이지 말라, 라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고기를 먹지 말라는 사람들도 모두 이해를 하는 편인데, 그 이해가 수십 수백 년 뒤에 어떤 방식으로 응징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고보니 L은 단호하지는 않은 채식주의자이다.


『아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 뒷정리를 했다. 그런 인상의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만나면 아빠는 “누구든 살다 보면 궁지에 몰리는 법이야. 몇 번이든.” 하고 말했다.』 (p.81)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되도록 긍정적인 편인데, ‘몇 번이든’이라는 표현에서 나는 그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누구든 살다 보면 궁지에 몰리는 법이야.’라는 문장 뒤에 ‘몇 번이든’이라고 덧붙이는 작가인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든’ 궁지에 몰리는 것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몇 번이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L이야말로 수도 없이 궁지에 몰리며 살아왔다.


“이 눈을 알고 있다. 남자가 취한 것처럼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약해진 느낌의 눈... 유코 씨를 만난 후의 신이치 눈과 똑같다. 나는 지금 나이며, 내가 아니다. 나 이상의 것으로 나 자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p.138)


소설에는 나와 돌아가신 엄마와 조금은 약해진 아버지가 등장하고 나의 먼 친척이자 한때 나와 연인 관계였고 지금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 신이치와 신이치의 아내인 유코,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 대신 서점을 이끄는 미야사카 씨가 등장한다. 가을 하늘을 닮은 초여름 하늘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 같은 날씨, 동네의 자그마한 쌀국수 집에서 식사를 한 다음, 이름 없는 작은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단숨에 읽어버리기에 적당한 소설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역 / 주주 / 민음사 / 165쪽 / 20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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