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스무 살 먼저 스무 살 생일, 소원 이야기...
《버스데이 걸》은 얼마 전 읽은 《이상한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카트 멘시크가 콜라보 한 그림 소설이다. 《이상한 도서관》보다 삼 년 앞서 출간되었다. 두 권 중 한 권은 문학사상에서 그리고 다른 한 권은 비채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때문에 그림을 그린 카트 멘시크의 표기가 《이상한 도서관》에서는 카트 멘쉬크로 되어 있고, 이런 경우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검색에서 누락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출판사들이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 그녀는 손님에게서 식사비를 받고 전화가 울리면 수화기를 들었다. 그 이외의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필요가 없는 한, 말은 하지 않았다. 항상 검은 원피스를 입었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섬뜩할 만큼 딱딱해서 밤바다에 띄워두면 배가 부딪혀 가라앉을 것 같았다... 플로어 매니저는 아마도 사십대 중반을 넘어선 정도였을 것이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서 젊은 시절에는 아마도 스포츠맨 체형이었겠지만 이제는 배와 턱에 군살이 붙기 시작했다. 짧고 굵은 머리칼은 정수리 근처가 조금 성글성글해졌다. 나이 들어가는 독신남에게 따라붙게 마련인 어떤 종류의 냄새가 그의 주변에 은근히 떠돌았다. 기침 멎는 드롭스와 신문지를 한참 동안 같은 서랍에 넣어둔 것 같은 냄새다...” (p.13)
하루키가 짧은 이야기 쓰기의 달인일 수 있는 이유들 중 하나는 인물 묘사에 있다. 그녀의 딱딱한 분위기에 부딪쳐 가라앉는 배를 떠올린다거나 독신남의 냄새를 ‘기침 멎는 드롭스와 신문지를 한참 동안 같은 서랍에 넣어둔’ 것 같다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등장인물이 있고 그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전체 분량의 얼마간은 후딱 채울 수 있다. 게다가 그 묘사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이따금 그 스무 살 생일날 밤에 일어난 일이 모두 다 환상이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해. 어떤 작용 같은 것이 일어나 실제로는 없었던 일을 그냥 있었다고 믿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p.51)
‘버스데이 걸’이라는 제목은 스무 살 생일날을 맞은 레스토랑 웨이트리스인 그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스무 살 생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그녀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운 매니저를 대신하여 사장의 방에 음식을 나르고, 그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 전체 내용이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러 그녀는 나와 그 소원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소설의 마지막까지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p.57)
소원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지만 그 소원이 꽤 시간이 걸리는 소원이었음은 힌트처럼 던져준다. 동시에 그 (우리는 알 수 없는) 소원을 제시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스무 살 생일 그리고 생일에 빌게 된 소원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누구나 스무 살이 있었을 것이고, 그 해 생일에 생각한 무엇인가가 있을테지? 라는 질문으로 끝이 나는 소설이다.
“당신은 스무 살 생일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가. 나는 매우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969년 1월 12일은 날씨가 쌀쌀하고 옅은 구름이 낀 겨울날로, 나는 아르바이트로 커피점 점원 일을 하고 있었다. 쉬고 싶어도 일을 바꿔줄 사람이 찾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즐거운 일 따위는 하나도 없었고, 그것은 나의 그로부터의 인생을 암시하는 것처럼(그때는) 느껴졌었다.” (p.63, 작가 후기 중)
계산해 보니 나의 스무 살은 1988년이었고, 음력으로 2월 26일인 나의 생일은 그 해 4월 12일이었다. 내 양력 생일은 4월 12일인데, 그 해에 내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은 같았다. 술을 마셨을 것 같지만 생일을 축하하며 마셨을 것 같지는 않다. 하루키는 작가 후기에서 1969년에 스무 살 생일이 있었다고 말해준다. 생일을 보니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쯤이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하루키는 이제 몇 살인 거야 짐작해보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나보다 스무 살 위, 라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칠십이 넘었군...
무라카미 하루키 / 카트 멘시크 그림 / 양윤옥 역 / 버스데이 걸 (Birthday Girl) / 비채 / 63쪽 / 2018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