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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8. 2024

이미상 외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어디에나 존재하는 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어느 집이나 그러하듯 목경의 집안에도 사고뭉치가 두 명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고모(다른 한 명은 무경)였다. 고모는 사 남매 중 막내로 부모와 같이 살았다. 보기에 따라 부모에게 얹혀산다고도 부모를 모시고 산다고도 할 수 있었다. 죽기 전 십 년 정도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어딘가에서 살았다. 십 년이 길어 보이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 텐데 후딱 지나간다.” (p.15) 어느 집이든 이런 고모(아니면 삼촌, 작은 아버지, 큰 할머니 등등)와 같은 누군가가 한 명쯤은 있다. 그리고 이런 고모는 다른 누군가를 통해 그 면면이 이어지고는 한다. 소설에서 이 고모를 이어가는 것은 무경이고, 그런 고모와 무경을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것은 목경이다. 그런데 소설의 또다른 한 켠에는 목경이 엿듣는 옆 테이블 여자들의 대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녀들은 ‘작가인 모양으로’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소설의 ‘한 방’ 혹은 ‘결정적 순간’의 있고 없고에 대한 내용이다. 목경이 겪은 가족의 이야기와 목경이 엿들은 작가의 이야기가 짜깁기 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랄 수 있겠다. 그런데 어느 것이 외피이고 어느 것이 내피인지 확정짓기 힘들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김멜라, 라는 이름의 작가를 눈여겨 보고 있다. 읽기에 쉽지 않은 소설을 쓰고 있기는 한데, 그냥 놓쳐버리기에는 나름의 독특한 정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은 죽은 이가 동행자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알릴만한 이를 찾아내고 또한 그에 걸맞는 꿈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 다루고 있다. ‘괄호’로 표현되는 나라는 (죽은) 존재에 대한 이런저런 규정들이 등장하는데, 좀더 천착하여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성혜령 「버섯 농장」

  진화는 명의도용 사기를 당했고, 자신에게 가해한 사기꾼과 연락이 닿지 않자 그 사기꾼의 아비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 길에 동행한 것은 친구인 기진이고, 두 사람은 버섯 농장이었던 비닐하우스에 기거하는 남자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앟는다 하고, 진화는 남자의 머리를 골프채로...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든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김호균이 왜 김오리를 만날 수 없다고 했는지도 알았어. 언니, 김오리는 진짜 사람이 아니야. 김오리의 미소, 눈빛, 땀, 눈물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그렇지만 김오리의 팔로어는 나보다 오백 배나 더 많아. 김오리는 그새 더 유명해져서 이젠 온갖 광고를 찍고 다녀. 김오리가 버추얼 인풀루언서라는 게 알려진 뒤에도 팔로어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p.183) 어찌 보면 수상작인 이미상의 소설과 가느다랗게 맥락이 닿아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근희라는 이름의 사고무치 가족이 등장한다. 나의 동생이고, 유튜브 방송을 하고, 수시로 사기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살아 있는 존재이고, 혹은 바로 그래서 살아 있는 존재이다.

 

  정서임 「요카타」

  “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다라는 말보다 더 다행 같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pp.222~223) 그때는 그런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러니까 죽은 언니의 생년을 이어받은 채로 저도 모르게 쭈욱 살아가게 되는 동생인 나와 같은... 그렇게 나는 백 살이 되었고 인터뷰의 대상이 되어 진행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나의 삶은 요카타, 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어쩌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의 삶을 철저히 아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나만 남았다.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너더러 자개장을 쓸 때는 돌아올 거리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누구한테도 이 말을 하지 않았어. 그게 나를 떠날 방법으로 쓰일까봐 무서웠기 때문이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너희가 갈까봐.” (p.271) 아마도 <어바웃 타임>이라는 제목의 영화일 것이다. 옷장과 같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서 주먹을 꽉 쥐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이었다. 소설 속의 자개장은 시간의 이동이 아니라 공간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용도를 가진다. 이 가족이 공유하는 비밀이다.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 손가락을 쭉 펼치자 뭉툭하던 통증이 길쭉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손가락을 쉼없이 꼼지락거리고 움찔거리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내가 꿈에서도 글을 쓰고 있다고, 타자기를 누르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꿈에서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나를 잠에서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손을 움켜쥐는 것이다. 헛되이 바비 움직이는 손가락을 꽉 붙들어 때늦은 자상함과 의미 없는 보살핌이 만들어내는 기만적인 보람을, 비겁한 기쁨을, 지어낸 행복을 깨뜨리는 것이다. 미처 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일들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 나를 다시 끌어다 놓는 것이다. 글로 쓰인 좋은 이야기들이 내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대 밑으로 툭툭 떨어진다. 밥상을 차려온 엄마의 발등을 멍들게 한다.” (pp.308~309) 그러니까 소설은 어떤 강박, 에를 들면 글 쓰는 일 같은 것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연필 샌드위치’라는 단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는데, 내내 입안이 텁텁하고 써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청 시달렸다.



이미상, 김멜라, 성혜령, 이서수, 정선임, 함윤이, 현호정 /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59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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