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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8. 2024

최진영 외 《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지금 우리의 겉과 속의 풍경을 바라보고자 하는...

  최진영 「홈 스위트 홈」

  “... 비가 그친 어느날에는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났다. 당시 두어 살이던 내 손바닥보다 작고 깨끗해 보이는 연두색 생명체. 나는 손을 뻗었고 청개구리는 폴짝폴짝 뛰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울었다. 왜 울었을까? 그때 내가 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 잊어서 영영 모를 것이 되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한 사람의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을 수만은 없고... 나는 청개구리를 기억한다. 이유를 망각한 나의 울음을 기억한다. 아주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왜 남아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억들.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청개구리가 나를 선택했다.” (pp.13~14) ‘나조차 잊어서 영영 모를 것’이 되어버린, 연유를 알 수 없는 행위에 대한 기억이 내게도 꽤 있다. 그래서 이 문장 앞에서 멈춰 섰지만 이 문장에 이르는 길에 놓인 작가의 풍경 묘사들이 좋았다. 근래 들어 우리 작가들의 소설에서 이러한 풍경(멀거나 가깝거나 자연이거나 인공이거나)의 묘사들이 줄어든 것 같다. 이야기를 위한 효율은 풍경의 묘사를 줄이는 것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성비를 따질 일이 아니다.) 이야기는 어진과 동거하면서 사십 대를 맞이한 내가 항암 치료와 재발을 거듭하며 죽음으로 다가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중에 맞닥뜨린 집이 있고, 엄마도 있다. 희망적이지 않지만 이것을 희망이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도 없다. “...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p.37)


  최진영 「유진」

  생일이면 나에게 전화를 거는 공미, 공미가 꺼낸 유진 언니의 죽음, 그리고 내가 꺼내는 유진 언니에 대한 기억... 성이 다를 뿐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던 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이상할 터...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시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선배 역할을 하였던 유진 언니... 유진 언니가 보여 주었던 것과 내가 보았던 것 사이에는 ‘까마득’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과연...


  김기태 「세상 모든 바다」

  이런 소설도 나올 법하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바다’ 줄여서 ‘세모바’라고 부르는 아이돌(이지만 아이돌을 뛰어 넘는)의 팬인 나를 다루는 그런 이야기... 물론 비슷한 소설들이 몇 편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건 좀더 본격적이다. 아이돌을 뛰어넘는 아이돌이 지향하는 바, 그러한 아이돌의 팬으로서 갖게 되는 여러 감정, 팬들 사이의 소통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이 다뤄지고 있다.


  박서련 「나, 나, 마들렌」

  <나, 나, 마들렌>이라는 제목이 의아했는데 두 명의 나 그리고 마들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나는 분열하고 그렇게 두 명이 된 나는 조심스럽게 어영부영 동거 중인 마들렌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어찌어띠 펀딩 물량 배송을 마친 나는 퇴근하고 곧장 피시방에 갔다. 그대로 집에 갔다간 마들렌에게 왜 집에 있는 내가 또 돌아오는지를 설명해야 할 테니까. 법정에 갔던 나는 마들렌, 변호사, 마들렌의 연대인들하고 버섯전골을 먹고 일찌감치 집에 돌아간 참이었다.” (p.155) 물론 한 명의 나보다 두 명의 내가 있을 때의 유불리 혹은 편리와 불편을 따지려는 소설은 아니다. 명확히 동성애자라고 불러야 하나 싶은 마들렌과 나의 흔들리는 심정들을 다루는 데 분열된 내가 사용된다. 그렇다고 그 분열이 그 심정들의 해소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이 두 명의 나 중 한 명의 내가 또 분열한다. 이제 나, 나, 나, 마들렌이 되었다.

 

  서성란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혜순의 딸 연희는 희곡을 쓴다. 아버지 재섭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고 딸의 작업과도 연이 닿아 있지만 딸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연희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고 감상을 말하는 것은 혜순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희가 쓰고 있는 작품인 ‘돌아오는 아이들’의 이야기만은 혜순이 읽을 수가 없다. 한국으로부터 외국으로 입양을 갔던 아이들이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그러나 이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어째서 혜순은 그 이야기를 앞에 두고 난망의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희곡 속의 이야기가 혜순의 이야기로 습자하듯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장욱 「크로캅」

  크로캅이니 효도르니 하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격투기가 이제 막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시절의 1세대 스타쯤이 될 것이다. 그런 크로캅이 곤자가라는 흥행 강자에게 당했고, 그가 마흔두 살이 되었을 때 리벤지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피지컬 100>이라는 프로그램이 흥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그램이 런칭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외시경을 통해 바라보듯 첫 번째 이야기를 보았다. 나이 든 추성훈이 참가한 것을 보았고, 100명 중 1명이 되기 위한 여정에서 떨어졌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최은미 「그곳」

  말리산에 있는 말리산 공원 그리고 국민체육센터를 그곳으로 삼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곳에서 눈썹 문신을 한 여자로부터 팥과 천일염을 받았고, 동네 친구인 수석 씨와 말리산 공원을 찾아갈 때가 있다. 여름이 되고 체육센터가 폭염대피소로 지정된 다음에도 예전처럼 그곳을 찾는데, 더위를 피해 그곳으로 온 이재민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그러다가 자율 방재단 가입을 권유받는다. 그 사이 농가를 탈출한 곰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말리산으로 들어가고, 나는 여전히 말리산과 공원 그리고 다목적 체육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최진영, 김기태, 박서련, 서성란, 이장욱, 최은미 / 홈 스위트 홈 : 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 291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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