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아니게 나빠진 수면의 질을 위무하면서...
사람 나이로 열 살쯤이나 되었을까, 새로운 식구 고양이 들풀의 넘치는 에너지가 수면을 방해하는 요즘이다. 잠이 들기 전 침대에서 만끽하는 독서에의 집중도 힘들어졌다. 고양이 들녘이 십 년째 차지하고 있던 베개 위에서 밤마다 두 고양이가 다툰다. 책을 읽다말고 손을 뻗어서 싸움을 말려야하고, 두 고양이를 토닥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혀 주어야 한다. 진득하게 이야기에 집중할만한 여건이 되지 못한다.
“... 사회의 속도가 그 행복한 환상을 죄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환상 자체도 상품화되고 말았다. 오늘날 환상은 자본이 투하되는 새로운 프런티어이다. 요즘 시대의 환상은 공짜로 모두에게 고루 배분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하고 세련된, 그리고 아름답게 포장된 상품이 되었다...” (p.11)
읽다만 하루키의 산문집을 읽기에 적당한 시간이 된 것이라고 위무하며, 한 꼭지를 모두 읽는 동안에는 아무리 큰 소리로 싸워도 모른 척 해야지, 하면서 꾸역꾸역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읽었다. 잠시 집중하였다가 다시 그 고삐를 풀고, 서로의 목덜미를 아프지 않게 물고 늘어지는 두 고양이를 떼어놓고, 가만 어디까지 읽었더라 너스레를 떨면서 그 다음을 찾아 읽기에 적당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것을 챈들러 방식이라고 부른다... 우선은 책상 하나를 딱 정하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그리고 그 위에 원고지며(미국에는 원고지가 없지만, 그에 준하는 것) 만년필, 자료 등을 갖춰놓는다... 그리고 매일 일정 시간 - 예를 들어 두 시간이면 두 시간 -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것이다... 설령 한 줄도 못 쓴다 해도 아무튼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그동안 펜을 쥐고 어떻게든 글을 쓰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있어도 된다. 대신 딴청을 피워서는 안 된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와 놀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거나 해서는 안 된다. 쓰고 싶어지면 언제든 쓸 만한 태세를 갖추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한들 쓸 때와 똑같이 집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얘기다... 그러고 있다보면 당장은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하게 굴면서 불필요한 일을 해봐야 얻어지는 건 없다. 이것이 챈들러의 방식이다.” (pp.42~43)
그러다 글쓰기와 관련한 챈들러의 방식이라는 것을 읽는데, 들풀이처럼 활달한 나이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글쓰기가 쉽지 않겠구나, 별무소용인 걱정을 한다. 절대 딴청을 피워서는 안 되는, 빈 노트를 눈앞에 두고 ‘두 시간’,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그 시간을 견뎌내는 일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하루키는 그런 시간을 적지 않게 거쳤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 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은 이를 닦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거나 아침에 신문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일상적 행위였으며, 우리는 태엽을 감는 행위를 통해 시계와 정을 나누었다. 그런 시대에 시계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옛날에는 종종 시계와 눈이 마주쳤다. 요즘에는 그런 일마저 없어져버렸다. 물론 우리는 매일 시계를 보고 있지만, ‘눈이 마주치는’ 느낌은 이제 없다. 사이는 좋아도 정열이 식어버린 연인들처럼.” (p.121)
그 적지 않은 시간에는 글을 쓰는 시간도 들어 있을 터이고 (제아무리 하루키라고 하여도)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도 들어 있을 터인데, 내 생각에는 글을 쓰지 못하는 그 시간조차도 하루키는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멍한 시간에도, 차마 당장은 글로 만들 수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이나마,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어느 순간 곳간문을 열어 대방출, 소리 지르며 써내는 것 아닐까 싶다.
“나는 스스로도 몹시 조급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하고, 차분하지가 못하다... 대체로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빠르다. 천천히 식사를 즐기지 못한다... 술을 마시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그래서 진득하게 마시지를 못한다. 술이 센 것도 아니라서 혼자 마시고 싶은 만큼 얼른 마시고 그대로 잠드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상당히 비정서적인 성격이다.” (p.142)
읽고 두 고양이의 싸움을 말리고, 읽고 두 고양이를 쓰다듬어 달래고, 읽기를 멈추고 잠을 청하고, 두 고양이가 다시 싸우고 잠 청하기를 그만두고, 다시 읽고 또 싸움을 말리고, 읽고 두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고, 그러다가 책을 모두 읽었다. 곧이어 아내의 기상 시간에 맞춘 알람이 울렸고, 들풀이 때문에 수면의 질이 말이 아니야, 라고 울먹이며 아내는 일어났고, 그제야 두 고양이는 깨어난 아내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김난주 역 /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문학동네 / 199쪽 / 2012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