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굳이 의외의 상황으로 치닫고자 하는 마음이란...

by 우주에부는바람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는 우천염천雨天炎天을 원제로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이다. 먼저 그리스 그리고 다음에 터키를 여행하였는데, 구체적으로는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 그리고 터키의 동부 지역으로 여행객의 발길이 (지금은 모르겠지만 1990년 이전인 당시에는) 많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짐작된다. 하루키는 사진가 마쓰무라 에이조와 함께 굳이 그곳들을 여행한다.


“... 이 두 마을은 생겨난 과정이 전혀 다르고, 따라서 지켜야 하는 규범이나 가치관도 전혀 다르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종류도 다르거니와 지향하는 방향도 다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라노폴리스는 질서 없이 어지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속세의 인간들이 속한 마을인 반면, 다프니는 보편성과 청렴과 신앙으로 가득 찬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마을이다...” (p.10)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는 정부로부터 완전한 자치를 인정받는 종교적 성지이다. 동로마 황제의 통치의 시기를 지나 터키인이 다스렸고, 이후 그리스 정부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곳은 ‘그리스정교의 성지’로 남아 있으며 전통적인 종교적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2천 명 이상의 수도사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에게 전념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최근까지도 이곳은 그리스 정부의 허가와는 별도로 아토스에서 발급받은 허가증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 “어디에서 왔지?”라고 아버지가 묻는다. “일본에서 왔다”라고 대답하자 왠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로 왔지?”라고 묻기에 “비행기”라고 말하자 세 명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비행기래!”라고 한다.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 하나에 감동받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보는 일이다. 굉장한 곳에 왔다는 사실이 다시 실감 난다.』 (p.94)


이 엄숙하고 재미없는 공간에서 별별 고생을 하면서도 하루키는 의외의 재미를 찾아내는 재주를 부린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는 현지의 그리스인을 향하여 문명인으로서의 감상을 늘어놓는 대신, 그러한 그리스인의 반응을 통하여 그곳을 ‘굉장한 곳’으로 격상시키는 겸허의 자세도 꾸준히 견지한다. 그러면서도 투덜거림을 잊지 않는다. ‘사랑은 사라져도 친절은 남는다’라며 (커트 보네거트의 말인가, 라고 하루키는 갸웃거린다.) 무뚝뚝한 수도사들을 요령껏 깎아내린다.


“... 그곳에는 독특한 공기가 있었고 보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존재감이 있었고 그들의 눈은 살아 있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신선하고 폭력적인 눈빛이었다. 거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유보 조항은 없었다. ‘하지만’이나 ‘그러나’가 없는, 그곳에 존재하는 것 전부가 그 자체라는 눈빛이었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예측이 불가능했고, 규칙은 대부분 허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급히 말하자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이 있었다.” (p.204)


터키에서의 여행도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의 수도원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인 그것도 아시아인의 발길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의 반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고, 때때로 위험천만한 길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쿠르드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잔존하는 지역을, 그 갈등의 여진으로 차가운 눈빛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를 하루키는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 고양이는 반 호숫가에 사는 특별한 고양이를 말한다. 이 고양이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흰색 고양이지만 실은 수영을 굉장히 좋아한다. 물이 있으면 어쨌든 헤엄치고 본다. 상당히 유별난 녀석이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눈의 색깔이 다르다...” (p.256)


그 와중에, 그러니까 쿠르드 사람들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반을 방문하면서는 반 고양이(터키쉬 반 고양이)와의 만남을 갈구하는데, 생뚱맞고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나라도 그런 갈구를 피해갈 수 없었겠구나 싶다. 물론 하루키가 원하는 만큼의, 순수한 반 고양이와의 만남은 무산되는데, 이 또한 하루키의 이번 여행이 가지는 의외성이 만들어내는 당연한 결과만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 마쓰무라 에이조 사진 / 임홍빈 역 /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雨天炎天) / 문학사상 / 351쪽 / 2008, 2017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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