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특별한 무논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3부작 혹은 쥐 3부작이라고 불리우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 《1973년의 핀볼》(1980), 《양을 쫓는 모험》(1982)이 끝나고 6년이 흐른 다음인 1988년에 《댄스 댄스 댄스》가 발표되었다. 쥐 혹은 네즈미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죽었으므로, 이제 《댄스 댄스 댄스》는 온전히 내가 이끌어간다. 나는 그사이 결혼을 했고 다시 이혼을 했다. 그리고 이루카 호텔 혹은 돌핀 호텔에 대한 꿈을 꾸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라지는 거야. 우리는 모두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이동함에 따라 언젠가는 사라져버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사라질 때가 되면 사라진다고. 그리고 사라질 때가 올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아...” (p.311, 하권)
이루카 호텔 혹은 돌피 호텔은 《양을 쫓는 모험》에서 특별한 ‘귀’를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 사라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던 이 특별한 ‘귀’를 가진 여인은 이번 소설에 이르러서 ‘키키’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물론 이 이름도 그녀의 진짜 이름은 아니다. 그녀는 그저 그렇게 불렸을 뿐이다. 이루카 호텔 그리고 양 사나이와 ‘키키’라는 여인을 연결고리로 하여 시작되는 새로운 나의 모험이 바로 《댄스 댄스 댄스》이다.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한 번 발이 멈추면 이미 나로선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하고 말게 되고 말아. 그러면 자네의 연결고리는 모두가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쪽 세계에서밖엔 살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아. 자꾸 자꾸 이쪽 세계로 끌려들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 돼...” (p.167, 상권)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앞의 3부작에 비해 문장이 조금 길어졌다, 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로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설명이 끼어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앞의 세 편의 소설이 발간되고 흘러가버린 시간을 배려한 것일 수 있다. 죽은 혹은 사라진 ‘네즈미(쥐)’를 놓고 미스터리를 함께 하였던 양 사나이는 이번에는 사라진 혹은 죽은 ‘키키’를 비틀린 현실의 실마리로 내게 던진다. 소설의 군데군데에 이런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 혼란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새로운 세밀한 - 세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세밀할 뿐이다 - 혼란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 결과, 모든 것이 다 조금씩 왜곡되어 보였다. 거기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만히 응시하려고 하면, 저절로 목이 몇 도쯤 기울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왜곡, 기울어진다지만 아주 작은 각도라 실제로 별다른 해악은 없고, 별로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며, 줄곧 거기에 있으면 그것에 익숙해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역시 조금은 신경 쓰이는 왜곡이다...” (p.12, 상권)
이번 소설에서 ‘쥐’를 대신하는 인물로 ‘고탄다’를 꼽을 수가 있다. 그리고 사라진 ‘키키’의 자리에는 새로운 이루카 호텔의 유미요시가 있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열세 살 소녀 유키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등장하게 되는 이웃집 소녀 가사하라 메이를 연상시킨다. 이쯤 되면 캐릭터 돌려막기라고 할 법 하지만, 자기 증식을 능력으로 삼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문득, 자네와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점점 그러한 느낌이 드는군. 사소한 일에 일일이 구애되면서도, 큰일에 대해서는 묘하게 관대해져. 그런 패턴이 드러나 보이는군. 재미있는 성격이야...” (p.374, 상권)
그리고 개연성을 쫓지 않는 이야기의 달인으로서의 하루키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전체적으로는 말이 안 될 정도로 황당하면서도 세부적인 데는 이상하게 아주 또렷하고’ 라고 말했던 것을, 이번 소설에서는 ‘사소한 일에 일일이 구애되면서도, 큰일에 대해서는 묘하게 관대해져.’라고 다시 한 번 말한다. 어쨌든 하루키 자신도 자신의 작품이 지니는 이 태생적인 장점 혹은 단점을 누누이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 유유정 역 / 댄스 댄스 댄스 (ダンス.ダンス.ダンス) / 문학사상사 / 상권 375쪽, 하권 375쪽 / 2005, 2009 (1988)